21g,

vanilla

길카르ギルカル2018. 5. 4. 23:25










  "바닐라 라떼에 초콜렛 드리즐, 아트는 시간이 제일 오래 걸리는 것으로."

  

  "드시고 가십니까?"


  "당연하다. 그리고 바리스타에게 내 앞자리로 오라고 전해라."


  "바닐라 라떼, 아트 추가, 초콜렛 드리즐 추가, 매장, 카르나."




  일련의 대화를, 옆자리에 선 카르나는 묵묵히 바라보고 있었다. 




  "10,500원입니다. ……카드 받았습니다. 저희 매장 할인이나 적립 카드 없으신지."


  "잡종, 똑같은 걸 반복해서 묻지 마라."


  "루틴이라서. 자리에 가 계시면 바리스타가 가겠습니다."




  카드를 건네받은 길가메쉬가, 카운터 너머의 카르나를 향해 눈짓했다. 카르나는 한쪽 눈썹만 치켜올렸다. 


  요새 길가메쉬는 매일 카르나의 카페로 출근 도장을 찍고 있었다. 주문은 언제나 똑같았다. 한 모금도 입에 대지 않고 나가는 것까지 해서. 카페에 와서 카르나를 따로 지정까지 해 주문을 했으면 한 모금 마셔주기라도 하면 좋겠는데, 길가메쉬는 그 시럽에 드리즐까지 들어간 단 걸 어떻게 먹느냐는 한 마디로 모든 것을 일축했다. 연인이 그 일을 본업으로 하고 있다는 것은 조금도 신경쓰지 않는 눈치였다. 


  어차피 오늘도 안 마실 게 분명하다. 




  "추출 다 됐어요."


  "……고맙다."




  주문이 밀려 바쁜 바리스타를 자리까지 불러 잔뜩 고생시켜 놓고선 만든 음료는 입에 대지도 않고 나가는 남자를 짜증스러워하던 직원들도 이제는 으레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되어 있었다. 그야, 어쨌든 일단 그렇게 바리스타 한 명을 콕 찍어 지정하는 남자가 그 바리스타의 연인이라는 걸 알게 되기도 한 탓이다. 


  카르나는 거의 길가메쉬 전용이나 다름없을 넓은 트레이에 에스프레소 잔과 폼을 소복히 올린 스팀 밀크 피쳐를 담았다. 트레이에는 초콜렛 드리즐과 바닐라 시럽, 아트용의 얇은 스틱도 이미 올려져 있었다. 카르나는 옆을 돌아보았다. 같이 일하는 직원들이 이 일방적 연애 행각에 어떻게 더 어울려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카르나를 향해 애매한 미소와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카르나는 더 대꾸하지 않고 고개만 살짝 숙여보인 후 그 트레이를 길가메쉬가 앉아 있는 카운터석으로 날랐다.




  "늦다."




  오자마자 한다는 말이 지적이다. 카르나는 나지막히 한숨을 내쉬었다. 실상은 그가 계산하고 카운터 자리로 가 앉는 동안 거의 준비가 되어, 카르나가 자리로 올 때까지 2분도 걸리지 않았다.




  "이 정도도 기다리지 못할 거라면 어디든 남의 대접을 받는 곳에는 가지 않는 게 좋겠군."


  "너를 보러 왔는데 네가 늦지 않느냐."


  "길가메쉬, 여긴 카페다."


  "그건 나와 상관없는 일이다."




  ……역시, 직장을 알려준 게 화근이었나. 


  카르나는 대꾸하는 대신 머그에 에스프레소를 넣고, 바닐라 시럽을 한 번만 펌핑했다. 그가 먹지 않는다 해도 덜 달게, 그렇다고 해서 그가 주문한 메뉴가 아닌 것은 만들지 않는다. 폼이 가라앉지 않도록 피쳐를 기울여 스팀 밀크를 올렸다. 불평은 거기까지로 정했는지, 길가메쉬는 깍지를 끼고 앉아 카르나가 일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찰랑거릴 만큼 폼을 올린 다음, 초콜렛 드리즐을 모양내어 뿌리고 스틱을 튕겼다 당기며 모양을 잡았다. 태양을 상징하는 인도풍의 아트가 우유 거품과 초콜렛 시럽으로 커피잔 위에 재현된다. 


  그동안 길가메쉬는 카르나의 얼굴과 손을 거의 집어삼킬 듯이 쳐다보고 있었다. 그게 그가 여기까지 와서 카르나에게 마시지도 않을 바닐라 라떼에 아트까지 얹어 주문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마지막 선을 따라 그려내고 카르나가 고개를 들자, 눈이 마주쳤다.  


  머그컵이 놓여 있는 컵받침을 그의 앞으로 살짝 밀었다. 길가메쉬는 손을 풀어 한손으로 턱을 괴었다.


  어쨌든 손님은 손님이다. 카르나는 목을 가다듬었다. 




  "……주문하신 바닐라 라떼입니다."


  "음."




  길가메쉬는 컵받침째로 컵을 끌어당겼다. 그러나 잔을 들진 않았다. 시선은 여전히 카르나를 향한 채였다. 


  설탕이 맺힌 듯한 혀로, 길가메쉬가 말을 건네왔다. 요염하고도 도발적이기까지 한 미소를 띠고. 




  "카르나."


  "뭐지."


  ""새 아트를 개발할 마음은 없느냐?"


  "갑자기 무슨 소린가?"


  "그야 당연한 것 아니냐. 제일 오래 걸리는 것으로 시키는데도 시간이 너무 짧다. 시간이 더 오래 걸리는 것이 좋다."




  길가메쉬의 시선이 노골적으로 카르나의 가슴팍부터, 쇄골, 목, 턱선과 뺨을 훑었다. 공과 사의 기준으로 이 행동을 해석한다면, 틀림없이 사의 사에 들어가겠지. 지극히 공적인 장소에서 지극히 사적인 질문. 들어온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카르나는 부동자세로 서서 잠시 고민했다.




  "……그렇지만 안 마실 것 아닌가?"


  "마시고 안 마시고 따위는 중요치 않다. 네 얼굴을 더 오래 보기 위해서니까."


  "네 의도는 알고 있지만, 라떼 아트는 마시는 사람을 위한 것이다. 이 이상의 것이라면 우유 거품과 시럽보다는 화판과 물감으로 그리는 것이 어울린다."




  조금 전의 표정은 사라지고, 길가메쉬는 팔짱을 끼며 스툴의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스툴이 높은 편이라 앉아 있어도 그와 눈높이가 맞았다. 마주 바라본 길가메쉬의 표정은 심히 불쾌해 보였다. 


  그래서 카르나도 그를 곧게 바라봐 주었다. 


  ……직장까지 찾아와 응석(카르나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길가메쉬는 이 단어를 정말 싫어했다)을 부리는 연인의 모습이란.




  "그럼 한 잔 더 준비해라."




  한참의 눈싸움 끝에 길가메쉬가 가시돋친 어조로 쏘아붙였다. 카르나는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마시지 않을 음료를 두 잔이나 주문하는 것에 의미가 있나?"


  "네 얼굴을 보기 위해서라고 말했던 것 같은데."


  "무의미한 일이다."




  그야, 동거하고 있으니 얼마든지 집에서 볼 수 있는 얼굴이다. 굳이 여기까지 와서 찾을 필요가 있는지. 그 생각을 담아 눈빛으로 전하자, 길가메쉬가 말했다. 




  "네 일하는 얼굴이 보고 싶은 거다."


  "……음."



 

  길가메쉬의 말에, 카르나는 낮게 신음했다. 그 이유라면, 아주 납득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그 이유를 듣고 난 뒤에도 곤란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어쨌든 여기는 서비스를 업으로 하는 곳이고, 카르나가 일하는 곳이다. 한 명의 손님에게만 계속 매달려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카르나가 뭐라 말을 꺼내려 했을 때였다. 옆으로 슬쩍 다가온 동료가 카르나의 팔꿈치를 톡톡 두드렸다. 카르나가 옆을 돌아보자, 그는 조용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카르나, 이제 슬슬."




  거기까지만 해도 알았다. 


  요식업은 질도 질이지만, 스피드도 중요하다. 음료가 나오지 않는 걸 즐거워할 손님은 없다. 그러니까 슬슬 한계인 것이다. 카르나는 그에게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 길가메쉬를 돌아보았다. 




  "미안하다, 길가메쉬. 이만 가봐야겠다. 그 이야기는 집에서 하자."




  하지만 카르나의 말에도 길가메쉬는 여전히 탐탁지 않은 얼굴이었다. 팔짱을 낀 채로, 카르나의 동료 직원을 사나운 눈짓 한 번으로 퇴치한 그가 카르나 쪽으로 다시금 시선을 옮겼다. 초반에 직원들이 그를 싫어했던 것도 이런 이유가 컸다. 그는 이 악의적이지 않은 방해꾼들에게 짜증을 자주 냈다. 




  "……정말 갈 거냐."


  "일이니까."


  "……."


  "필요하면 불러라."




  카르나는 그렇게 말하고 몸을 돌렸다. 


  그 팔꿈치를, 길가메쉬가 잡았다. 




  "-별걸 다 하게 하는구나."




  길가메쉬는 카르나를 돌려세웠다. 그리고 잡아당겼다. 카운터에 몸이 부딪혔다. 아프다고 생각하는 동시에, 시각이 눈앞의 것을 인식한다. 길가메쉬의 얼굴이 가깝다. 




  "……!"




  카르나는 눈을 깜박였다. 길가메쉬의 금빛 머리카락이 치켜뜬 카르나의 눈 바로 앞에서, 희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상황을 파악하는 데에는 시간이 걸렸다. 길가메쉬는 카운터 너머로 몸을 내밀고 있었고, 카르나가 입은 베스트의 어깨 부분을 움켜쥐고 있었다. 느리게 눈을 뜬 길가메쉬가 카르나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카르나는 숨을 들이켰다. 그는 카르나의 입술 위로 자신의 입술을 찍듯이 눌렀다. 


  가게 안의 소리가 멀어지고 있었다. 바로 코앞의 숨소리만이 선명했다. 


  카르나는 조건반사적으로 눈을 감으려다가.




  "……."




  길가메쉬의 어깨를 밀어서 떼어냈다. 


  의외로 그는 카르나의 옷을 잡고 있던 손을 놓고 순순히 물러났다. 젖은 입술을 혀로 핥는 것이 누가 봐도 고혹적인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지만 무시하지 못할 것은 아니었다. 카르나가 어깨를 떨군 채 그를 쳐다보고 있자, 길가메쉬는 눈썹을 치켜올리며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었다. 




  "……네 돌발 행동에 어디까지 어울려야 하는지 모르겠군."




  카르나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지금 것으로 10분."


  "기다리겠다는 건 아니겠지."


  "아니, 정확하다. 10분 기다려주마. 이제 가 봐라."




  내키는 대로 해서 만족했다는 표정이다.


  카르나는 아무 말 없이 그를 쳐다보았다.


  주변에서 카르나를 두고 하는 평은 주로 선량함에 대한 것이 많다. 구체적으로는 자원봉사 사기에 잘 걸릴 것 같다든가, 구걸하는 사람들에게 지갑이랑 교통카드까지 다 주고 올 것 같다든가 하는 식이다. 그러나 그는 선량함으로만 이루어진 존재는 아니다. 카르나가 품고 있는 승부욕이 그의 선량함에 비해 잘 알려져 있지 않을 뿐이다. 카르나가 이런 종류의 도발에 어떻게 임하는지는, 손에 꼽을 정도의 몇 명만이 알고 있다. 


  카르나는 길가메쉬의 앞에 놓인 머그컵을 들어 입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그걸 한 모금 마시고 내려놓았다. 위에 라떼 아트를 올렸으니, 당연하게도 그의 입술엔 우유 거품과 초콜렛 드리즐이 묻었다. 그대로 카르나는 길가메쉬의 팔을 잡아당겼다. 


  길가메쉬가 웃었다. 다음에 일어날 일이 무엇인지 그는 이미 짐작한 것이다. 그래서 카르나는 가차없이 길가메쉬의 입술을 빼앗았다. 


  몸을 떼어낸 카르나는 아까 전 길가메쉬가 했던 것처럼, 그러나 손가락으로 입술을 훑고 말했다. 




  "10분 더 기다려라. 20분."




  담담한 어조였다. 


  길가메쉬는 제법이라는 듯, 턱을 당겨가며 눈짓했다. 하지만 카르나는 휙 몸을 돌렸다. 


  에스프레소 머신 앞까지 걸어간 카르나를 향해, 카운터석의 길가메쉬가 말했다. 




  "카르나."




  카르나는 뒤를 돌아보았다. 길가메쉬의 손에는 조금 전의 컵이 들려 있었다. 


  길가메쉬는 보란듯이 그걸 다 마셨다. 


  그야, 길가메쉬의 기호에 맞출 요량으로 최대한 덜 달게 한 것이긴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너무 갑작스럽다. 카르나는 눈을 커다랗게 뜨고 그가 하는 걸 쳐다보았다. 컵을 내려놓고 스툴에서 내려온 그가, 멈춰 있는 카르나보다 먼저 계산대로 갔다. 가볍기 그지없는 걸음이었다.

 



  "주문하시겠습니까?"


  "거기 바리스타를 지금 테이크아웃으로."




  길가메쉬가 즐거운 어조로 말했다. 


  계산대에 선 동료가 대체 이게 무슨 소리냐는 얼굴로 카르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

  오다이바코에 남겨주신 길카르 얘기와 바닐라 라떼, 감사합니다ㅠㅁㅠ!!

  사족을 달자면... 길가메쉬가 와서 얌전히 음료만 마시고 돌아가는 이유는 이전에 둘이 카르나의 일 관련으로 싸우다(맨날 카르나를 데려가려고 하는 길가메쉬와 일해야 한다고 버티는 카르나) 너네 가게 있는 건물이랑 가게까지 몽땅 다 사 버릴 거라고 했더니 카르나가 정말 진지한 어조로 (내가 스스로 선택해 하고 있는 일을 그렇게까지 방해할 정도라니)너는 나를 싫어하냐고 물어봐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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