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나카르ジュナカル

당신의 초상 / 현대 대학생 AU

||||||||||||| 2018. 5. 7. 09:39










  "자, 아까 짝지어 준 대로 다 앉았지요."

 



  교수는 그렇게 말하며 각자 이젤을 두고 마주앉은 학생들을 돌아보았다. 아르주나는 괜스레 쓰고 있던 안경을 닦는 체하며,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정정 기간에 바꿨더라면 좋았을 텐데. 애매하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지금까지 끌고 온 자신을 탓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교양 수업이 아니면 타과생을 만날 일이 별로 없을 테니까, 작업은 오늘 안에 끝내도록 하세요."




  어색한 웃음소리들. 틀림없이 강의 시간을 오버할 거란 사실을, 다들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자, 시작들 합시다 하고 교수가 손뼉을 쳤지만 학생들끼리는 연필보다는 시선이 바쁘게 오갔다. 언제쯤 도망쳐 나갈지를 고민하고 있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걸 눈치채기라도 했는지 교수는 재빨리 덧붙여 말했다. 




  "이걸로 중간 과제를 채점할 겁니다."


  "……아……."




  안타까운 신음이 곳곳에서 터져나왔다. 아르주나는 안경을 썼다. 




  "저, 교수님, 꼭 오늘 제출까지 해야 하나요?"




  용기 있는 학생 한 명이 손을 들고 일어나 그렇게 물었다. 교수는 잠시 고민하는 듯하다 대답했다. 




  "……오늘 다 끝낸 사람들은 두고 가고, 정 오늘 못 하겠다 싶은 사람들은 알아서 두 사람이 시간 맞춰 그린 다음 이번 주 금요일까지 내 사무실로 제출해요."


  "예……, 감사합니다."


  "그럼 다시 시작하세요."




  그제서야 학생들이 느릿느릿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교수는 의자를 끌고 벽 쪽으로 가 앉았다. 사각사각, 하는 말간 소리들이 강의실 안에 울렸다. 


  아르주나는 이젤 너머의 남자를 흘끗 곁눈질했다. 그가 아르주나의 이번 모델이다. 남자는 왼팔을 무릎 위에 늘어뜨린 채 앉아, 뭘 하는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대로 그리려니 그림에 정수리와 쓸데없이 높고 반듯한 콧등만 그리게 생겼다. 아르주나는 목소리를 낮춰 그를 불렀다. 




  "……카르나, 제대로 앉으세요."


  "음? 아."




  남자가 고개를 들었다. 그는 아르주나와 이래저래 구면인 사이였다. 


  물론 좋은 관계는 아니다.




  "그림을 그릴 수 없잖습니까."




  퉁명스러운 어조로 쏘아붙이자, 카르나는 무표정인 채로 눈만 살짝 내리깔았다. 




  "미안하다."


  "사과는 됐으니 머리나 좀 정리해 보세요. 당신 머리카락만 그리다가 시간이 다 가게 생겼습니다."


  "……아르주나 네가 그렇게 손이 느리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그만큼 당신 머리 상태가 심각하단 겁니다. 얘기의 맥락을 읽으세요."




  아르주나의 지적에 카르나는 눈을 깜박이다, 손을 들어 자신의 머리카락을 슥슥 만졌다. 




  "됐나?"


  "……아뇨."


  "지금은?"


  "더 심란해 보입니다."


  "……이래도?"




  차라리 손대지 말라고 할 걸 그랬다. 


  아르주나는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그 소리에 카르나는 손을 멈췄다.




  "됐습니다. 그냥 그릴 테니까."


  "음."




  카르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있으면 되나?"


  "네. 그대로 가만히."


  "이렇게?"




  더 이상 말하지 않기로 마음먹고, 연필을 든 아르주나는 종이 위에 큰 형태를 잡아나가기 시작했다. 


  초상화라고만 했지 다 그리라는 말은 하지 않았으니 상반신까지만 그리고 말 생각이었다. 얼굴, 귀, 목, 어깨. 종이에는 대충 비례를 맞추어 잡기만 하고, 맞은편에 부동자세로 앉아 있는 그를 곁눈질하며 고쳐나갔다. 


  물론 아르주나의 전공은 미술과 관련이 없다. 하지만 아르주나는 그 자신이 못하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성격이었다. 이 회화 수업만 해도 어쩌다 신청하게 된 것에 지나지 않으나 듣게 된 이상 필사적으로 수업에 임했다. 사실 지금은 전공보다도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있기도 했다. 공부야 해온 게 있다 쳐도 그림은 별로 한 게 없으니까. 



  곧 그의 종이 위에는, 아주 성에 차는 정도는 아니어도 그럭저럭 만족할 수 있을 만큼의 형태가 나타났다. 아르주나는 연필을 멈추고 그림을 살폈다. 그리고 고개를 내밀어 실제의 카르나와 비교해 보았다.  


  카르나는 아르주나에게 말을 건네던 그 자세 그대로 앉아 있었다. 




  "……."




  아무래도 그 자신 역시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걸 잊고 있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 


  잠시 고민한 끝에 쓸데없는 참견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아르주나는 결국 조금 전의 결심을 깨고 입을 열었다. 




  "……당신은 안 그릴 겁니까?"


  "지금은."


  "혹시나 해서 말하는 거지만, 두 번 만날 일은 없게 하죠, 우리."


  "그럴 거다."




  아르주나는 의심의 시선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진심입니다."


  "내게 신경 쓸 여유가 있다면 네 그림에 더 집중하는 게 좋겠다."




  아르주나는 뭐라 더 말하려다가, 그냥 입을 다물고 연필을 고쳐쥐었다. 


  그래, 틀린 말은 아니다. 남에게 신경쓰느니 네 일에나 신경쓰라는 말. 분명 틀린 말이 아닌데도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기분을 망치게 하는 훌륭한 화법이다. 애초에 서로 말을 더 섞지 않기로 결심했으면서 말을 건 아르주나의 잘못이 크다. 


  넘겨다본 벽면의 시계가 어느새 40여 분이 지났음을 알리고 있었다. 그쯤에서 아르주나는 대강의 형태를 잡는 것을 끝냈다. 슬슬 세부 묘사로 들어가야 한다. 아르주나는 제일 먼저 뭘 그려야 하는지 잠시 생각하다, 일단은 눈, 하고 스스로 결론을 내렸다. 


  짜증나는 사실이긴 하지만 카르나의 눈은 잘 기억하고 있다. 그건 굳이 그를 보지 않아도 될 정도다. 끝이 또렷하게 치켜올라간 눈매에, 눈동자는 힘이 있다. 상대의 머릿속까지 꿰뚫어보려는 것 같은 눈이다. 상대방의 눈을 너무 빤히 쳐다보는 것은 매너가 아니라는 게 기본 상식이지만 애초부터 카르나에겐 그런 게 없다. 그건 그 눈을 보며 몇 번이나 대화해야 했던 아르주나가 잘 알고 있다. 덕분에 그 눈도 잘 기억하고 있다. 


  아르주나는 종이 너머에서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는 눈동자를 그려넣고, 죽 뻗은 콧날로 연필을 옮겨갔다. 코 아래는 입술. 얇지만 선이 분명한 입술은 밉살맞게 꽉 다물려 있다. 턱선을 한 번 손질하고, 귀 부분을 묘사했다. 그의 왼쪽 귀에 있는 귀걸이를 그리고, 그 위로 내려오는 머리카락을 가벼운 선으로 쳐냈다. 그리고 이마 위로 드리워지는 머리카락. 


  그즈음에서 아르주나는 확인차 고개를 옆으로 빼 카르나를 쳐다보았다. 손 가는 대로 그려버린 탓에 머리카락이 뻗친 정도가 좀 과하지 않나 생각했지만, 전혀 아니었다. 오히려 실물이 그 이상이었다. 


  교수의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그때였다.




  "카르나 군은 안 그릴 겁니까?"




  ……그럼 그렇지. 


  그렇게 손 놓고 있다가 걸릴 줄 알았다. 


  의자에서 일어나 강의실 안을 돌아다니던 교수가, 앉아만 있는 카르나에게 말을 걸어 온 것이다. 그를 앞에 두고도 아르주나는 모르는 척 연필을 계속 움직였다. 


  이젤 너머로 카르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때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가증스러울 만큼 태연한 어조다.




  "때?"


  "네."




  그걸 대체 뭘로 해석한 건지는 몰라도, 교수는 꽤 호의적으로 받아들인 듯했다. 오히려 아르주나가 태클을 걸고 싶어질 정도로.




  "흠, 그렇군요. ……만약 시간 안에 완성 못 한다면 아르주나 군과 시간을 의논해서 그리도록 하세요."


  "네."




  그렇게 할까보냐.


  강의 시간에 같은 강의실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별로인데 그 외의 시간까지 따로 내 만날 생각은 없다. 아르주나의 목표는 이번 시간, 여기에서 과제를 다 끝내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아르주나의 마음을 모르는 채로 교수는 카르나의 옆을 지나쳐, 반대쪽으로 걸어갔다. 아르주나는 멀어지는 교수의 등을 흘끗 쳐다보곤 자신의 종이 위로 시선을 옮겼다. 


  그래, 시간 안에 끝내고 갈 거니까. 


  두상의 묘사는 대강 마무리 지은 뒤, 얼굴에는 간단한 명암만 넣어놓고 아르주나는 그의 얇은 턱 아래를 묘사하기 시작했다. 목, 그리고 어깨로 이어지는 선. 그가 두르고 있는 가을용의 머플러를 그대로 그릴까 하다가, 거기서 연필을 멈췄다. 일차 스케치 때에는 굳이 머플러를 그리지 않았지만 세부 묘사를 하면서 그리려고 보니 머플러의 존재는 의외로 귀찮다. 목을 그리는 것과, 목과 머플러를 그리는 것. 누가 봐도 시간을 절약할 수 있는 것은 전자다. 


  ……그렇다고 해서 카르나에게 머플러를 좀 풀어보라든가 등의 말은 하기 싫고. 


  할 수 없이 아르주나는 자신과 타협했다. 머플러가 없는 그의 목 부분은 상상해서 그리기로. 아르주나는 다시 연필을 움직였다. 굳이 상상인 이유는, 아르주나 본인도 카르나의 목을 본 일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의 쏘아보는 듯한 눈이나 일반인은 이해할 수 없는 화법으로 툭툭 말을 내뱉는 입술과는 다르다. 그의 목은 언제나 무언가에 의해 숨겨져 있다. 


  아마도 이렇게 생겼겠지, 하는 추측에 의해 아르주나는 카르나의 목을 그려나갔다. 아마, 이런 느낌의 선이겠지, 하고. 머플러가 없다면 이렇게 보이겠지. 떠오르는 대로 그린 뒤, 손을 멈추고 그림을 살폈다. 


  깨끗하고 곧은 목이다.




  "……아르주나."




  갑자기 카르나가 그를 불러, 아르주나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어쩐지, 해선 안 될 일을 하다 들킨 기분이다. 아르주나는 괜스레 연필 든 손을 숨겼다. 숨길 필요도 없는 것이지만, 그냥 나온 행동이었다. 


  카르나는 그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왠지 모르게 목덜미를 잡힌 듯한 기분이다. 아르주나는 잠깐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뭡니까, 사람을 불렀으면 말을."


  "잠깐만."




  카르나가 손바닥을 들어보였다. 아르주나는 말하려다 말고 입을 다물었다. 그건 카르나가 그를 떠드는 어린애처럼 취급해서는 아니었다. 그냥 카르나의 그 행동이 어이없었을 뿐이다. 그런 줄도 모르고 카르나는 태연한 어조로, 더욱 더 폭탄 같은 발언을 던져왔다. 




  "표정 풀어라."


  "하?"


  "잠깐이면 된다."




  그렇게 하라고 해서 풀어질 표정이면 애초에 구기지도 않았다.


  아르주나는 한층 더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카르나를 노려보았다. 카르나는 잠깐 이젤 쪽으로 갔다가, 다시 몸을 내밀어 아르주나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얼마간 손을 움직이더니 아르주나를 보며 말했다.




  "싫은가?"


  "네."


  "그렇다면 어쩔 수 없군."


  "……아니, 이게 무슨……."




  하지만 카르나는 대꾸도 하지 않고, 자신의 이젤 쪽으로 아예 몸을 바로 하고 앉아 그림을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아르주나만 기가 찬 얼굴로 이젤에 가려진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도대체.




  "뭡니까, 카르나?"




  카르나는 듣는 척도 하지 않았다. 연필을 움직이는 팔이 이따금 이젤 밖으로 튀어나왔다가, 금방 움직여 안 보이게 되었다. 아르주나는 다시 물어보려다가, 이를 악물었다.


  이래서 이 남자가 싫다.


  카르나의 페이스는 완전히 제멋대로다. 근처에 있으면 늘 휘말리게 되어 있다. 아르주나는 크게 한숨을 내쉬고, 연필을 잡았다. 


  자신의 그림을 돌아보자, 그 속엔 정말 짜증나는 상대의 편린이 있었다. 울컥하는 마음에 아르주나는 그림을 구기려다 참았다. 그래, 이건 과제다. 이럴 줄 알았다면 역시 이따위 수업 듣는 게 아니었는데. 중간 과제라 해도 애초에 시작하지 않는 게 나았다. 그러나 이미 해버렸는걸.




  "……후."




  아르주나는 심호흡을 했다. 휩쓸려가면 끝도 없다. 상대는 아르주나가 완전히 지쳐 나가떨어질 때까지 그를 들었다 놨다 하니까. 


  그래, 휩쓸리지 않아야 한다. 


  아르주나는 그 자신을 그렇게 타이르고, 다시 연필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짜증나는 남자랑 또 같은 공간에 있고 싶지 않으면 이번 시간 안에 다 끝내야 한다. 


  묘사하다 만 목 부분에 연필 끝을 가져다 대고, 목의 선과 희미하게 튀어나온 울대뼈, 죽 뻗은 선을 그린다. 상상 속 카르나의 목은 눈빛만큼이나 쓸데없이 반듯하다. 별로 본 적이 없기는 해도 그렇겠지. 하지만 그런 만큼 시간이 오래 걸렸다. 그나마 목 부분을 넘기자 속도가 붙었다. 옷을 그리고 나면, 일차적으로 완성된 그림에 명암을 좀 더 세세하게 얹고 끝이다.


  20분이나 지났을까, 갑자기 카르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 끝났는데."


  "하?"




  얼빠진 소리를 내는 아르주나에게는 조금도 신경쓰지 않고 카르나는 교수를 돌아보았다. 




  "내면 될까요."


  "……어, 아, 그래요."




  교수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카르나에게 손짓했다. 자연스럽게, 여전히 이젤 앞에 앉은 학생들의 시선이 카르나를 향했다. 


  카르나는 화판에 고정한 종이를 빼내 교수가 앉은 곳까지 걸어갔다. 아르주나도 다른 학생들과 함께 그를 쳐다보았다. 전체적인 수업 시간이야 꽤 지났다 쳐도 카르나는 아까 전 아르주나에게 쓸데없는 말을 할 때까지 그림에서 완전히 손을 놓고 있었다. 


  ……카르나 녀석, 대체 나를 어떻게 그린 거냐.


  그 생각이 먼저 들었다. 아르주나는 자신이 그리고 있던 카르나를 바라보았다.




  "오."




  교수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르주나는 다시 그쪽을 쳐다보았다. 


  카르나의 그림을 받아든 교수는 흥미롭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원래 그림을 배웠다고 했던가요?"


  "아뇨."


  "그럼?"




  꽤 살가운 교수의 말에도 카르나는 멀뚱히 그를 쳐다보고만 있었다. 


  끔찍할 정도의 커뮤니케이션 문제아다. 하지만 다음의 말을 하는 교수의 목소리는 여전히 호의적이었다. 




  "기다리던 때가 이거였군요."




  이거?


  아르주나는 눈을 깜박였다. 때, 라고 한다면 좀 전에 교수와 카르나가 이야기하던 그거다. 카르나가 기다리고 있다고 말한 것.  




  "음, ……알겠습니다."




  교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그 종이를 받고, 카르나에게 미소지으며 가도 된다고 말했다. 


  아니, 두 사람이 같이 짝지어서 그림을 그리는 건데, 그렇게 한쪽을 보내버리면. 


  ……거의 다 그리긴 했지만…….


  그림을 제출하고 돌아온 카르나는 이젤 옆에 내려놓았던 캔버스백을 집어들었다. 스케치에 사용한 도구를 정리하고 자리에서 다시 일어난다. 옷의 주름 모양은 변했지만 아르주나는 일어난 그의 모습에서 필요한 부분들을 재빨리 잡아냈다. 이젤을 옮겨다 놓고 온 카르나가 아르주나를 불렀다.  




  "먼저 가겠다."


  "……그러든가요."




  아르주나는 뚱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필요하면 불러라."




  그리고 카르나는 강의실 바깥으로 나가버렸다. 


  아르주나는 순식간에 텅 비어버린 자신의 앞자리를 쳐다보았다가, 한숨을 쉬었다. 


  정말 짜증나는 인간이다. 








  결국 아르주나는 마지막까지 남아 그림을 완성했다. 강의 시간은 한참 오버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 뒤로 수업이 없다는 것이었다. 아르주나는 화판에 고정했던 종이를 빼내, 학생들이 제출하고 간 종이더미가 있는 쪽으로 가지고 걸어갔다.


  강의실 안에는 이제 정말로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심지어 교수마저도 다음 수업이 있다고 나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수가 그 중간과제 종이들을 챙겨가지 않은 건 단순한 건망증에서가 아니라, 끝까지 남은 아르주나가 자신의 그림을 완성한 뒤 스스로 사무실에 가져다주겠다고 자청해서였다. 


  아르주나는 아무렇게나 쌓인 종이더미를 바라보다가, 자신의 것을 옆에 내려놓고 종이를 모아 정리하기 시작했다. 


  ……사이사이 한두 번만 정리를 해줘도 이렇게 되지 않는데. 


  가로와 세로를 맞춰가며 정리하고 난 뒤, 아르주나는 제일 위에 자신의 것을 얹었다. 그리고 뒤집었다. 


  사실 그가, 종이를 가져가려는 교수에게 선뜻 자신이 정리해 가져가겠다고 말한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가장 먼저 제출했으니, 카르나의 그림은 제일 아래에 있다. 그리고 이제 그 종이를 뒤집었으니 필연적으로 그의 그림은 제일 위가 된다. 


  예상대로였다. 제일 위에는 아르주나의 초상을 그린 그림이 있다. 카르나가 제출하고 간 작품이다. 




  "……아."




  그걸 본 순간, 아르주나는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를 냈다. 




  "……."




  그리고 반사적으로 입을 다물었다.  


  이상한 그림은 아니었다. 아니, 어쩌면 이상한 그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웃긴 그림은 아니다. 대충 그린 그림도 아니고


  하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는 표현 외에는 별다르게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아르주나는 한참 말없이 그림 속의 자신을 내려다보다, 종이를 내려놓고 팔짱을 꼈다. 


  그렇다고 해서 그림이 바뀌지는 않는다. 알고 있지만, 하는 것이다. 한숨을 내쉬어도 바뀌지 않는다. 그래도 했다. 아르주나는 한손을 들어 마른세수를 했다. 


  여전히 그림은 바뀌지 않았다




  "……대체."




  이렇게 허탈한 소리가 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냥 그 그림이 초상화라기보단 상상화나 다름없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믿기지 않는 기분으로 아르주나는 다시 그림을 쳐다보았다. 


  그림 속에 있는 남자는 틀림없는 아르주나다. 비록 터치는 거칠고 난폭하지만, 아르주나를 아는 사람들이라면 그림 속의 사람이 아르주나라는 것을 알아볼 게 분명할 정도의 것이었다. 


  다만 표정이 아니었을 뿐이다. 


  그림 속의 남자는 등받이가 없는 둥근 의자에 앉아 있었고, 눈을 감고 있었다. 그리고 조용한 미소를 띤 채였다. 그림 속에서 빛은 비스듬히 들어와 남자의 측면에 머무르고, 그 반대편에는 그늘이 짙었다. 


  아르주나는 카르나를 향해 웃었던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그러니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




  그쯤에서 아르주나는 다시 종이더미를 뒤집었다. 그리고 옆에 내려두었던 자신의 그림을 들고 자리로 돌아갔다. 


  고치고 싶은 부분이 생겼다.


  다행히 이 뒤로도 수업은 없다. 시간은 넉넉하다.


  아르주나는 챙겼던 연필과 지우개를 다시 꺼냈다. 










  +

  오다이바코에 남겨주신 서로의 초상화를 그리는 현대AU 주나카르입니다.

  정말 쓸데없는 사족이지만 아르주나는 재료공학부, 카르나는 수학부 전공이면 좋을 것 같았어요... 리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