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가 있는 풍경 1
+현대AU, 캐스터 길가메쉬와 카르나(고양이)
손바닥만한, 고양이였다.
처음에는 누가 이런 날씨에 수건을 버렸나 했지만, 자세히 보니 몸을 한껏 웅크린 고양이였다. 눈은 감겨 있었어도 얕게나마 호흡이 이어지고 있었다.
본 이상은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다.
길가메쉬는 우산을 받쳐든 채 그쪽을 한참 바라보다가, 천천히 걸음을 옮겨 그 앞으로 다가갔다. 조그만, 길가메쉬의 손바닥 위에도 올라올 만큼 작은 새끼 고양이였다. 잠시 고민하던 그는 우산을 살짝 기울였다. 그리고 좀 더 고민하다 몸을 숙였다. 한손으로 안아올려 안자, 잔뜩 젖은 털 너머로 모호한 체온이 전해져왔다. 길가메쉬는 고양이를 안은 손을 가슴 가까이 당겨 감싸안았다.
하고 많은 길고양이들 중 길가메쉬가 그날 그 고양이를 구하게 된 것은, 여러 우연에 의해서였다. 이날은 그동안 진행하던 인수합병 건이 확정됐고, 일을 일찍 마무리짓고 퇴근한 길가메쉬에게는 평소보다 주변을 살펴볼 만한 주의력이 남아 있었다. 거기다 비가 꽤 오고 있어 걷는 속도도 느렸다. 그가 주변을 볼 만한 상황은 준비되어 있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만약 그 고양이가 단순히 비를 피하고 있거나, 멀쩡히 달려가고 있었던 것이라면 눈길도 얼마 주지 않았겠지만.
어쨌든 그게 쓰러져 있는 모습은, 일에 지쳐 나자빠진 그 자신의 모습과도 조금은 닮아 있다. 얼마 전에 그 역시 딱 저렇게 길가에 쓰러지기까지 해 더더욱 맘이 편치 않았다.
고양이를 안아올린 길가메쉬는 로비를 지나 엘레베이터 홀로 향했다. 품에 안은 것의 호흡은 미약했고, 안고 있지 않으면 느끼기 어려울 정도였다. 전용 엘레베이터에 몸을 싣고 올라가는 그 짧은 동안에도 점점 희미해지는 것 같았다.
기껏 안은 것이 숨이 꺼지는 순간을 보고 싶지 않다. 길가메쉬는 집 문이 열리자마자 우산을 아무렇게나 내던지고 들어가 곧바로 손목 찜질용의 온수매트를 찾았다. 다행히, 쓰고 그대로 올려둔 것이 소파 근처에 떨어져 있었다. 물은 채워져 있었기 때문에 곧바로 전원을 넣어 데웠다. 그동안 고양이를 안고 그는 가장 가까운 욕실로 들어갔다.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는 찬장의 수건들 중 손에 잡히는 것을 잡아당겨 꺼냈다. 그 옆에 끼워져 있던 수건들까지 바닥으로 떨어졌지만 그건 길가메쉬가 신경 쓸 바가 아니다. 수건으로 털의 물기를 닦아낸 다음, 드라이기의 전원을 꽂고 온풍을 틀었다. 그리고 고양이의 몸에 얼마간 따뜻한 바람을 쐬어 털을 말려주었다. 손가락으로 슬슬 털을 훑어가며 말리자, 군데군데 털이 빠져 드러난 상처들이 만져졌다. 상처에 손이 닿을 때마다 고양이는 울 힘도 없는지 몸을 약간 떨고 말 뿐이었다. 길가메쉬는 두 번째 수건을 꺼내 감싼 뒤, 다시 소파 쪽으로 데리고 나왔다.
조금씩 따스한 기운이 올라오는 온수매트 위에 수건으로 감싼 고양이를 올려놓고, 길가메쉬는 그 옆에 누웠다. 소파는 넓어서 그도 고양이도 누울 자리가 충분했다. 수건 위로 손을 얹은 길가메쉬는 천천히 그 자그마한 등을 다독여 주었다.
……일 때문에 지쳐 잠든 나와 닮았다고 생각했으니, 이대로 죽게 놔둬서야, 심란하겠지.
그 고양이의 현재.
카르나(고양이, 추정 1살)는 낚싯대를 물고 냉장고 위에 올라가 있다.
"……던지지 말라고 하지 않았느냐."
길가메쉬는 한숨을 내쉬며 냉장고 위에 올라간 고양이를 잡아내렸다. 뒤에서 금방 쫓아온 엘키두가 해맑게 웃으며 대꾸했다.
"언제 봐도 놀라운 운동신경이네."
"그러니까, 굳이 던지지 않아도 될 것을."
"그치만 능력이 있는 건 그냥 놔두면 아깝잖아."
"내려주고 나서 말해라."
"음, 길이 내려주지 않을까?"
낚싯대를 문 채로 바닥에 내려진 카르나는 보송할 정도로 자란 흰색의 긴 털을 팔락이며 엘키두의 앞으로 걸어가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엘키두의 발등 위에 낚싯대를 내려놓았다.
몸을 숙인 엘키두가 그 낚싯대를 주워들었다.
"귀여워라."
"아무튼, 낚싯대는 던지지 마라. 던질 거라면 공도 있는데 굳이. ……아니, 네가 잘못 던졌다간 집 안 가재도구가 남아나지 않을 테니까, 애초에 던지지 마라."
"놀아주다 보면 던질 수도 있는 거지. 그치, 카르나?"
고양이 카르나는 대답 대신 앞발을 혀로 핥고 있었다. 그리고 만족스러울 만큼 털을 정리하고 난 다음에는 고개를 들어 엘키두를 올려다보곤.
종종걸음으로 길가메쉬에게 다가와 길가메쉬의 바짓단에 털을 묻히기 시작했다.
길가메쉬는 카르나를 안아올렸다. 팔에 안긴 따끈한 생명체가 골골골 목을 울리고 있다. 이 생물은 사람을 좋아하고, 노는 걸 좋아하고, 특히 상자에는 머리부터 뛰어든다. 내려오기가 수월치 않을 걸 알아도 노리던 게 있으면 어디든 열심히 뛰어올라간다. 그런 게 좀 유치하고, 귀엽다.
그렇게 생각하며 길가메쉬는 카르나의 이마를 문질러줬다. 파랗고 커다란 눈이 느릿느릿 가늘어진다.
"팔불출."
"실제로 예쁘니 됐다."
엘키두의 놀리는 말에도, 길가메쉬는 태연히 반격했다.
"뭐, 길이 좋다면야."
"음."
"귀엽기도 하고."
"알고 있다."
"네 얘기 아니니까 말이야? 고양이 얘기."
길가메쉬는 카르나를 바닥에 내려주었다. 한참 아기 고양이처럼 기분 좋게 안겨 있던 카르나가, 바닥을 디디고 서서 길가메쉬를 올려다보았다. 좀처럼 옆을 떠나지 않는다.
"놀고 있어라, 카르나."
말뜻을 알아듣기라도 하는 걸까. 길가메쉬가 그렇게 말하자 그의 고양이는 하품을 작게 한 번 하고, 길가메쉬의 슬리퍼 위에 탈파닥 앉았다.
"갈 생각 없다는 거 같은데?"
"……."
"하하, 영락없이 고양이 아빠네, 길."
길가메쉬는 다시 카르나를 안아올렸다. 카르나가 작은 머리를 길가메쉬의 팔에 부벼왔다.
"아빠라니."
"그럼?"
"보호자겠지."
"그거나 그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