Небо хочет упасть #상 / 테메레르 AU
그 길가메쉬가 비행사를 골랐다는 사실은, 삽시간에 주둔지 전체로 퍼졌다.
공군 내에서 길가메쉬 용중장이라는 존재가 가지는 의미를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었다. 공군 소속의 용들 중 그보다 위에 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으며, 그는 여러 마리의 용이 편대를 이루어 비행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 공군 방침에서도 특례적인 존재였다. 편대는 물론 비행사나 다른 수행원 한 명도 없이 언제나 단독 강습을 맡고 있었기 때문이다. 공군 소속의 병사들 중 그에 대해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 그가, 첫 비행사를 잃은 지 이십여 년만에 비행사를 맞이했다. 주둔지가 소란스러워질 만도 했다. 원래의 막사에 어영부영 짐을 다시 풀어놓게 된 카르나는 그 바로 다음날부터 주목의 대상이 되었다. 하지만 계급이 계급이고, 또 그에게 얼마 전 일어났던 일이 있어선지 섣불리 말을 걸어오는 사람은 없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가 나타날 때면 끌려가듯 고개를 움직여 카르나를 바라보았다가, 카르나가 시야에서 사라져갈 때즈음 입을 열었다. 그들은 안 보이게 된 카르나를 두고 이야기했다.
대령에겐 어떨지 몰라도, 군의 입장에선 좋은 일이 아닐까? 속을 알 수 없는 용에게는 새 목줄이 생겼고, 대령에겐 그의 능력에 맞는 훌륭한 용이 주어졌으니까.
……그런 이야기를 듣지 못 한 척 하는 것도 고역이었다.
"다행이네요. 사격에는 무리가 없겠습니다."
"그런가."
"주안이 왼쪽 눈인 걸 다행으로 여기셔야겠어요."
카르나는 손에 들린 권총과, 병사가 회수해 온 과녁지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오른쪽 눈의 시력을 잃은 후로 처음 해 보는 사격이었지만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과녁지의 최중심에 한 발, 바로 그 주변에 다섯 발.
당분간 카르나의 주치의 역할을 하게 된 군의관이 카르나의 손에서 권총을 받아 옆에 내려놓았다.
"그래도 오른쪽 눈은 조만간 의안을 마련해야겠군요."
껄끄러운 단어에, 카르나는 침묵했다. 눈앞에 대화 상대가 있을 때엔 그렇게 입을 다물어버리는 게 실례임을 알고 있었지만서도.
"……미리 말씀드리는 거지만, 외관상의 문제는 아니니까요. 의학상의 소견입니다."
군의관은 그렇게 말하며 여전히 붕대로 감싸 놓은 카르나의 오른쪽 눈을 가리켰다. 왼쪽 눈만을 내리깐 카르나가 그렇군, 하고 한참이 지나서야 중얼거렸다. 그리고 거기에서도 또 한참 후에야 덧붙여 말했다.
"허투루 할 이야기는 아니라는 것, 알고 있다."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최대한 빠르게 준비를 요청해 두겠습니다."
"음, 네게 사의를 표한다."
"과분한 말씀을.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시죠."
그의 말에 카르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비행사 복귀를 위한 테스트의 공식적인 끝이었다.
"부상이 나으시는 대로 복귀하실 수 있도록 위원회에 말씀드리겠습니다."
"부탁하지."
그가 거수 경례를 붙였다. 카르나는 가벼운 눈짓으로만 대답했다. 용건을 마친 그는 차트를 챙겨 빠른 걸음으로 의료 막사 쪽을 향했다.
카르나는 그 뒷모습이 작아져 안 보이게 될 때까지 서 있다가, 그가 보이지 않게 된 것을 확인하고 난 다음에야 근처에 있는 간이식 의자에 가 앉았다.
태연한 척 하고 있었지만 실은 꽤 긴장해 있던 모양이다. 몸 여기저기가 욱신거리고, 손을 떨지 않기 위해 권총을 꽉 쥐느라 손바닥이 다 얼얼했다. 의자에 앉아 등받이에 몸을 기대자 피로까지 몰려왔다.
이걸로 다시 싸울 수 있게 됐다.
딱딱한 의자였지만 편안한 침대나 다름없었다. 카르나는 팔짱을 낀 채로 그대로 눈을 감았다.
- 내가 너를 뭐라고 부르면 될까.
- 글쎄.
- 말하기 싫다면 말하지 않아도 된다.
- …….
- …….
- ……이름은 무의미하다.
- 그런가.
- 죽을 게 아니라면.
- …….
- 이름은 죽어가는 것들에게 필요한 것이니까.
빗소리가 들렸다.
카르나는 눈을 떴다. 머리 위로 펼쳐진 장막, 그 바깥으로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카르나는 고개를 틀어 위를 올려다보았다. 넓은 피막은 연한 금빛을 띠고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누구인지 금방 알아볼 수 있었다.
"……미안하다. 네게 폐를 끼쳤군."
용이 대답했다.
"멍청한 소리는 집어치워라."
"그렇게 들렸나."
"일주일만에 죽고 싶어진 게 아니라면 바깥에선 자지 마라."
카르나는 팔짱을 풀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용의 날개는 상당히 높은 곳에 있었고, 날개를 펼치고 있는 탓에 그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뱃속을 울릴 만큼, 목소리는 또렷하게 들려왔다.
"그 상처에 이 정도의 비와 습기면, 2차 감염도 일어날 수 있다. 총을 맞은 것만큼이나 괴로워하다 죽고 싶은 거라면 네놈 맘대로 해도 좋지만."
일어난 카르나는 아마도 그의 얼굴이 있겠거니 싶은 방향을 향해 말했다.
"충고는 고맙게 받아들이겠다."
"충고가 아니라 명령이다. 네놈과 나의 계급차를 알고 있을 텐데."
"……그것도 그렇군."
중장과 대령은 3계급 차가 난다. 원래대로라면 카르나는 그에게 경어를 써야 한다. 그 외에도 상대가 장성급 장교에 해당되는 만큼 지켜야 할 예절은 많다. 그나마 용과 비행사의 관계에서는 군의 예절이 다소 유연하게 적용되는 게 다행인 것이다.
높았던 그의 날개가 낮아지고 있었다. 카르나는 눈을 깜박였다. 거대한 기척과 함께, 그 날개는 낮게 드리워지고 곧 그 사이로 용의 아름다운 얼굴이 보였다.
카르나는 그쪽으로 걸음을 떼었다. 자신의 날개 아래로 긴 목을 밀어넣은 그의 얼굴이 빗물로 젖어 있었다. 카르나는 그의 입김이 바람처럼 느껴질 정도의 거리까지 걸어갔다. 그리고 걸치고 있던 군용 모직 코트를 벗어 용의 얼굴 비늘을 닦기 시작했다. 그의 금빛 용은 그것이 당연하다는 양 두꺼운 눈꺼풀을 닫은 채 가만히 있었다.
"비를 맞았군."
"임시 주둔지 따위에서 제대로 된 막사를 기대할 순 없지. 격에 맞지 않는 물건은 품위를 손상시킨다."
"용은 비를 싫어하지 않나?"
"불을 뿜는 것들이나 그렇다."
카르나의 손이 멈췄다.
"……아."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용은 한쪽 눈만을 떠 그를 바라보았다.
"그렇, ……그렇군."
"……."
"미안하다. 멍청한 질문이었다."
"됐다."
카르나는 다시금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코트는 두꺼운 모직 걸레 같은 꼴이 되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물기를 짜 가며 분주히 움직여 용의 얼굴을 다 닦아낸 뒤, 카르나는 그의 앞으로 돌아와 섰다.
"고맙다."
"……."
"네 덕분에 비를 피했다."
"……."
"네 말대로 들어갈까 하는데, 너는."
"……글쎄, 특별히 갈 곳은 없다."
"그런가."
조금 생각하는 듯하던 카르나가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 의자를 끌고 왔다. 용이 비를 막아주었다 하나 주변의 습기를 머금어 흙은 부드러워져 있었다. 카르나가 의자를 끌고 오는대로 흙에 의자의 다리가 끌려 생채기가 났다. 용의 앞에 카르나는 의자를 두고 앉았다.
"들어간다 하지 않았느냐?"
"생각이 바뀌었다."
"……."
"네가 여기 있는다면 나도 여기 있겠다."
젖은 공기를 가르는 소리와 함께 다시금 머리 위의 날개가 한층 낮아졌다. 카르나는 눈 한번 깜박이지도 않고, 커다란 붉은 눈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둔한 놈."
용이 그렇게 말했다.
카르나는 대답 대신 다시 팔짱을 끼고 눈을 감았다.
"들어갈 때에 깨워주겠나."
"네놈 내 말을 듣긴 한 것이냐? 멍청한 짓도 정도껏 해라."
"들었지만, 네가 여기 있는다면 나 역시 여기 있을 뿐이다."
"……."
"용과 용비행사는 함께 있어야 하니까."
존재에 이름이 주어지는 순간부터 그건 죽어가게 되는 걸까.
카르나는 꿈을 꾸었다.
검은 알을 막 깨고 나오는 아기 용을 바라보는 꿈이었다. 꿈속의 카르나는 한참을 기다려, 그 아기 용이 알을 깨고 나오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마침내 그 아기 용이 켈룩대며 뜨끈한 숨을 뱉어냈을 때, 그 작은 숨결을 따라 피어오르는 불꽃을 보았다. 꿈속의 카르나가 그 아기 용을 향해 두 팔을 벌리자, 용은 무거운 몸을 밀며 카르나에게 기어와 그의 어깨에 큰 턱을 얹었다. 묵직하고도 단단한, 뜨겁고도 부드러운 그 몸을 끌어안으며, 카르나는 속삭였다.
- 네 이름을 정했어.
길가메쉬는 꿈을 꾸었다.
비 오던 날, 물안개가 한없이 꾸물거리던 산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누군가의 발소리가 들렸고, 물렁해진 흙과 젖은 나뭇잎을 밟는 기척이 났다. 꿈속의 길가메쉬는 점점 가까워지는 사람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막 움터 올라온 새싹의 연둣빛처럼 맑은 색의 머리카락이 보였고, 곧 매끄러운 두 눈동자가 그를 향해 부드럽게 웃었다. 소년인 듯 청년인 듯 나이를 알 수 없는 그는 길가메쉬에게 다가와 마치 오랜 친구처럼 두 팔을 벌려 길가메쉬의 코를 끌어안았다.
- 내 이름은…….
이름을 가진다는 건, 태어났다는 뜻이니까.
누구나 태어나면 죽어가잖아. 그렇지?
그게 외로운 일은 아닐 거야. 당연한 일이니까…….
카르나는 길가메쉬가 소속되어 있는 비행 편대로 배치되었다. 말이 편대지 구성원은 한 마리의 용과 한 명의 비행사가 전부였다. 용 한 마리당 이십여 명의 소대원이 배치되는 것이 보통이었으나 그런 소대원조차 한 명 없었다. 그러나 카르나는 금방 이해했다. 그는 비행사를 제외하곤 누구도 몸에 태우지 않는다.
"하네스는?"
"그딴 건 없다."
"……없다고?"
앵커를 손에 들고 있던 카르나가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그게 없으면 내가 네 등에 올라갈 수 없는데."
"내가 언제 내 등에 올라타라고 했느냐?"
"그러면?"
길가메쉬는 앞발을 벌렸다. 카르나가 머무는 막사 하나 정도가 들어갈 발과, 그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자 그가 귀찮다는 듯 대꾸했다.
"타라."
"……네 앞발에 말인가?"
"두 번 설명하게 하지 마라."
"하지만 거기에 타면."
카르나는 자신이 끌고 온 군용 가방을 돌아보았다. 몇 개의 앵커가 걸려 있어 용의 하네스에 맬 수 있게 되어 있는 그 비행 전용 가방 안에는, 공중전에 필요한 무기와 화약들이 들어 있었다.
"싸울 수 없지 않나?"
"네가?"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자, 용은 코웃음을 쳤다.
"네놈이 싸울 일이 뭐가 있지? 비행사는 싸울 일이 없다."
"……."
"좋다, 네가 들어오지 않고 거기서 버티고 있을 거라면."
뒤집힌 길가메쉬의 발. 그리고 그 거대한 발톱으로 그는 카르나의 비행복 뒤쪽을 잡아올렸다. 튼튼한 재질로 만들어진 비행복은 백 킬로그램의 무게도 견딜 수 있었다. 덕분에 카르나는 그대로 공중으로 끌려올라갔다. 그리고 그의 용은 마치 어린애가 장난감이라도 쥐듯이 카르나의 몸을 앞발로 감쌌다.
"……내게도 인격이 있다."
"내 명령이 그에 우선한다."
카르나는 바닥에 놓여 있는 비행 가방을 내려다보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용은 그대로 그 자신의 앞발을 들어올려 그의 코앞까지 가져갔다.
"내게는 네 이름이 필요 없다."
"……."
"그게 무슨 뜻인지, 알고 있겠지."
커다란 붉은 눈동자 안의, 가늘게 찢어진 검은 동공이 들여다보이는 거리였다.
누군가의 속을 들여다볼 수 있는 거리.
카르나는 대답 대신 눈을 깜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