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나카르ジュナカル

불확정성 연인 #3 / 현대 대학생 AU

||||||||||||| 2018. 9. 24. 19:22










  "……그럼 저희는 사귀는 사이가 된 것, 맞죠."


  "전적으로 긍정하는 바다."




  예스.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는 완벽한 확답이다. 카르나의 무른 표정이 아르주나에게는 확신으로 다가온다. 


  아, 역시 한 달을 기다린 보람이 있다. 아르주나는 그렇게 되뇌었다. 한 달. 새삼 돌이켜보면 아득하게 느껴질 정도다. 물론 매 순간마다 오로지 그만을 생각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으나, 한 달은 길었다. 좋아하는 사람으로부터 이렇다 할 대답 대신 번호와 대기 번호 알림 문자만을 받으며 기다리기에는.   


  하지만 어쨌든 그 끝에 맞이하게 된 남자는 눈부시다. 


  아르주나의 앞에는, 아르주나의 최대 난제가 눈을 내리깐 채로 서 있다. 블레이저의 어깨 부분 위로 햇살이 내린다. 그 어깨에 내려앉은 반짝거리는 먼지를 털어주고 싶다고 생각한다.




  "……아, 그리고."


  "네?"


  "네게는 미안하게 되었지만."


 


  이런 상황에서 갑자기 미안하다고 할 것은 뭔


  아르주나는 그의 멘트에 긴장해 카르나를 쳐다보았다. 




  "지금부터 선약이 있어 가 봐야겠군."


  "선약, 이요?"


  "응."




  카르나가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리고 그가 몸을 돌려 가려는 것을, 아르주나는 다급히 붙잡았다. 




  "잠깐만요!"


  "?"


  "아니, 저, 지금."




  진정해라. 


  진정해라, 아르주나. 심호흡을 한다. 




  "……저희 지금 막, 사귀기로 한 것 아니었습니까?"


  "그랬다만?"




  조금 전의 말랑한 표정과는 달리, 그거랑 이게 무슨 상관이 있냐는 듯 의아한 낯빛을 하고 있다. 




  "그런데 한다는 말이 이렇게 곧장, 선약이라뇨."


  "선약은 선약이니까……."




  곤혹스럽다는 눈빛. 


  다급히 입 안에 털어넣었던 약의 찝찝한 신맛이 올라오는 것 같다. 아르주나는 바싹 마른 입술을 혀로 훑은 다음, 카르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저희, 사귀는 사이니까."


  "응."


  "저도 같이 가겠습니다."




  카르나는 눈을 깜박거렸다. 




  "내 선약에 네가 왜 같이 가겠다고 하는 거지."


  "그야……."




  거기에서 아르주나는 머뭇거렸다.


  카르나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아르주나 역시 누군가와 사귀어 본 적은 없으나 책이나, 주워 들은 지식으로 알고 있다. 연인 관계에서 집착은 좋지 않다. 서로의 사생활을 존중하는 선에서, 감정적이고도 이성적인 교류를 이어가야…….


  하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그런 게 대체 뭐란 말인가. 




  "그, 서로를 알아가는 데에 있어, 중요하지 않을까요."


  "……."




  잠시 생각하는 듯하던 카르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했다."


  "그렇습니까."


  "그런 것이 네게 도움이 된다면."




  그는 그렇게 대답하곤 몸을 돌려 걷기 시작했다. 말은 분명 따라와도 된다는 뜻일 것 같은데, 그런 것치곤 카르나의 발걸음이 빠르다. 잠깐 멍하니 서 있던 아르주나는 빠른걸음으로 그의 뒤를 따라잡았다. 




  "어디로 가는 겁니까?"


  "가 보면 안다."




  그리고 걸었다.


  학생회관 앞을 지나, 교양학부 건물을 통과했다. 


  카르나는 별 망설임 없이 계속 걸었다. 아르주나는 그 뒤를 바쁘게 쫓았다. 그러는 동안 카르나는 아르주나를 돌아보지도, 말을 걸지도 않았다. 누가 보면 연인은커녕 친구도 아닌 생판 남인 줄 알았을지 모른다. 그러나 아르주나는 그 상황을 냉정하게 이해하려 애썼다. 꽤 촉박한 모양이지.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견디기 어려울 속도였다. 


  평소의 걸음걸이라면 10분 정도 걸렸을 거리를 6분만에 주파해 두 사람이 도착한 곳은, 법학부 건물을 지나서 곧바로 보이체육관이었다. 



  

  "……여긴 왜."


  "가 보면 안다고 하지 않았나."




  체육관의 입구를 향하는 계단을 성큼 올라서며, 카르나가 뒤를 돌아보았다. 


  이제야.




  "돌아가도 상관없다."


  "돌아간다고 한 적은 없습니다."




  아르주나는 단호하게 대꾸했다. 그리고 카르나가 올라간 만큼을 곧장 따라잡아 그의 옆에 섰다. 




  "……선약이라는 게, 여기였습니까?"


  "음."


  "누구랑요?"


  "경제학부."




  계단을 다 오르고 나자 체육관 앞에 내걸린 플랜카드가 눈에 띄었다. 2학기 종강 기념 학부 대항 체육대회.


  어리둥절. 




  "……당신 경제학부도 아니잖아요?"


  "농학부다."


  "아니, 그래서 농학부인 당신이 왜 여길."


  "헬프로."




  미처 갈무리하지 못한 표정이 그대로 얼굴에 드러나버린 모양이다. 그걸 본 카르나가 덧붙였다. 




  "경제학부에서 꼭 와달라고 했다."


  "그렇지만 농학부인 당신이 가면, 그러니까……, 그, 페어 플레이가 아니지 않습니까?"


  "경제학부 학생회의 허가는 받았다."


  "상대 학부의 허가는요?"


  "아."




  그건 미처 생각 못 했다, 고 말하는 것 같은 움직임으로, 막 발걸음을 떼어 놓으려던 카르나가 멈춰 섰다. 




  "그러고 보니 그것도 그렇군……."


  "……."


  "상대 학부에도 허락을 받아야 했는가……."




  눈에 띄게, 카르나의 어깨가 축 처진다. 정말로 거기까진 생각하지 않은 모양이다.


  아르주나는 플랜카드 쪽을 다시금 쳐다보았다. 그러고 보니 아르주나가 소속되어 있는 이학부에서도 선수를 모집했던가? 물론 공부와 관련된 내용이 아니니까 기억나지 않는다 해도 이상할 일은 아니다. 그래도 음, 경제학부라. 정황상 생각해 봤을 때, 정말로 사람이 모자랐을 것 같진 않지만……. 




  "뭐, 상관없을 수도 있을 것 같……."




  거기에서 아르주나는 슬쩍 카르나를 돌아보았다.




  "……상관없겠죠."


  "그런가……. 그런가."



 

  중얼거리던 카르나가 아르주나와 체육관의 입구 쪽에 번갈아 시선을 주었다. 조금 안심한 것 같다. 




  "카르나!"




  그리고 때맞춰, 체육관 입구 쪽에서 밝은 연두색 머리의 남자가 뛰어나왔다. 달려나온 그는 순식간에 카르나와 아르주나가 서 있는 앞까지 와선, 카르나의 손을 꽉 맞잡았다.




  "와 줬구나! 역시, 너라면 와 줄 거라고 생각했어! 자, 이쪽으로, 이쪽으로!"




  들고 온 팀 조끼를 안기곤 카르나를 데려가는 그의 뒤로, 아르주나는 재빠르게 따라붙었다. 


  이 사람, 누구더라. 낯이 익은데.




  "옷 갈아입고 나오면, 몸 풀 시간 딱 10분 정도 있을 거야. 잘 부탁해, 카르나. 난 이번 경기에서 우리가 이긴다는 거에 전재산을 걸었다고!"


  "파산의 경험은 한 번으로 족할 줄 알았다만……."


  "무슨 말을 그렇게 하는 거야? 난 믿어! 널 믿는 나를! 나를 믿는 너를!"


  "그건 맹신이다."


  "괜찮아! 위험과 스릴을 즐기는 나지만, 이번엔 확신 투자니까!"




  심상치 않은 단어 선택에서 대충 누군지 알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굳이 그 이상을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2학기 종강 기념 학부 대항 체육대회(농구) 경제학부 대 교육학부.


  경기 종료 스코어는 111:38.


  경제학부와 교육학부 학생들 사이에 낀 채로 스코어 보드를 바라보며, 아르주나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




  솔직히 말해 너무했다. 


  누가 너무했냐면, 인원수 부족을 핑계로 카르나를 영입해 온 경제학부의 모 씨.


  그리고 그 모 씨는 경기가 끝나자마자 상대 학부 팀원들에게 가서 수금을 하고 있는 중이다. 아마 경기 결과를 두고 내기를 한 게 틀림없다.


  한편 카르나는 팀 벤치에 앉아 수건으로 목과 이마를 닦고 있다. 경기 중엔 거치적거려 바짝 묶은 머리카락, 목덜미를 닦은 수건을 내려놓으며 카르나가 고개를 뒤로 젖힌다. 살짝, 땀이 맺힌 목.


  아르주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쨌든 카르나가 말한 선약은 이걸로 끝일 것이다. 사귀게 된 지 하루도 되지 않아 선약에 밀려나는 꼴이 되었지만 그래, 선약이니 참을 수 있다. 그러니까 이제부터는 뭔가 연인다운 걸…….




  "카르나, 밥 먹으러 가자! 내가 쏠게!"




  관중석에서 내려와 코트에 한 발을 디뎠을 때 들려온 말이었다. 아르주나는 반사적으로 카르나가 있는 쪽을 돌아보았다. 


  수건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난 카르나가 말했다. 




  "아니, 사양하겠다."


  "왜!? 요즘 애들 사이에서 소문난 레스토랑에 갈 건데."


 


  아르주나는 그가 더 말할세라 재빠르게 카르나의 앞으로 뛰어들었다. 




  "……죄송하지만 이쪽은 제가 데려가겠습니다."


  "엑."


  "아르주나?"




  그리고 아르주나는 카르나가 뭐라 이야기할 시간도 더 주지 않고 그대로 그를 끌고 나왔다. 뒤에서 맘 바뀌면 메시지 보내라든가, 하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멈추지 않았다. 


  체육관 밖까지 나와서야, 아르주나는 카르나의 손을 잡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그제야 놓는 것도 이상하게 여겨져 아르주나는 그의 손을 잡은 채로 별다른 말 없이 계속 걸었다. 카르나도 말없이 아르주나의 옆을 걸었다. 


  체육관, 법학부 건물, 중앙 정원…….


  체육관에서도 한참을 떨어진 다음에야 발걸음을 늦추며 아르주나는 물었다. 




  "……혹시 이것 말고 또 다른 약속이 있거나 합니까?"


  "이제 없다."


  "그거 다행이군요."




  진심이었다. 




  "그럼……."


  "응."


  "……식사라도."




  오후 1시다. 조금 늦은 감은 있어도 점심을 먹기에 그렇게 이상할 정돈 아니다.


  핸드폰을 꺼내 시각을 확인한 카르나가 아르주나를 돌아보았다.  




  "점심 말인가."


  "아침이나 저녁을 먹을 시간은 아니니까요."


  "그렇다면 늘 가는 곳이 있다."


  "……그렇습니까."




  물론 식사를 할 곳을 당장 떠올리고 한 얘기는 아니었지만, 정말 자연스럽게 주도권을 뺏겨버렸다. 뭐, 상관없나. 어쨌든 조금 전처럼 농구 경기에 끌려가는 건 아닐 테니까. 




  "네가 괜찮다면."


  "괜찮습니다."




  카르나는 고개를 끄덕이곤, 앞서서 걷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잡고 있던 손을 놓은 다음이었다. 


  자신의 손 안에서 빠져나간 그의 손.


  비어 있는 손바닥을 잠시 내려다보다 아르주나는 발을 떼었다. 아쉬운 것은 있었으나 오늘은 사귀기 시작한 첫날이다. 아직은 서로 어색하기도 하고, 서로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고. 그리고 손은 어쩌다 잡았을 뿐이지……. 


  아니, 그렇지만 역시 아쉽다. 


  그렇게 생각하며, 아르주나는 빠르게 걸었다. 




  "……저, 카르나."


  "음?"




  그가 발을 멈추곤, 뒤를 돌아보았다. 




  "걷는 데에 방해가 되지 않는다면."


  "응."


  "……손, 잡고 걷지 않겠습니까."




  카르나는 동그랗게 뜬 눈을 깜박였다. 


  아르주나가 재빠르게 덧붙였다. 




  "사귀는 사이니까."


  "상관없다."


  "그럼."




  무심하게 내밀어지는 손. 


  아르주나는 그 앞까지 다가가, 자신의 손을 그 위에 겹쳤다. 


  잡고 있었던 동안은 따뜻했는데, 그새 찬공기에 닿아 식어버렸다. 희미한 온기가 남아 있을 뿐인 딱딱하고 마른 손을 아르주나는 자신의 손으로 감싸쥐었다. 




  "그래서 어디로 가는 겁니까?"


  "가 보면 안다."




  데자뷰?


  아니, 데자뷰는 아니다. 아까도 이 비슷한 일이…….




  "네 손은 따뜻하군."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툭 던져진 말에, 아르주나의 심장은 뱃속 밑바닥까지 떨어지는 소리로 내려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