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칵거리며, 태엽 장치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린다. 아르주나는 그 소리의 흐름에 몸을 맡긴 채, 느리게 흔들려 가고 있었다. 눈을 뜨는 것은 바위를 들어올리는 듯하고, 손가락 하나를 움직이는 것이 산맥을 움직이는 듯하다. 마치 이 흐름 속에서 그는 눈도 손도 발도 필요하지 않은 사람으로 완성된 것 같다.
그저 그렇게 느릿느릿, 부유해 간다. 태엽 장치의 소리와 함께 흔들려가며. 이따금 넘실대는 흐름이, 감긴 눈 안쪽으로도 빛을 몰고 들어온다. 볼 수는 없지만 틀림없이 그것이 바깥의 풍경이리라 생각한다.
이대로, 계속 이렇게 흔들려 갈 수만 있다면.
찰칵거리며, 금속끼리 맞부딪치는 소리. 어디선가 물거품 같은 것이 터지고 있다. 눈이 보이지 않는 만큼 청각은 손에 잡힐 듯 선명하다. 찰칵찰칵찰칵. 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오지만, 여전히 눈꺼풀을 밀어올리는 것은 편치 않다. 그는 그저 눈을 감은 채 흔들려 갈 뿐이다. 그래도 이대로도 모든 게 안락하고 완벽하다. 손에는 아무것도 잡히지 않아도.
이렇게 죽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아르주나는 그 평온함에 잠겨가며 다시금 입 속에서 되뇌었다. 여기는 그밖에 없을 텐데도 누군가가 듣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분명히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으니, 부디 이대로.
「…….」
누군가가 다정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정신이 들었을 때, 아르주나는 낯선 곳에 자신이 서 있음을 알았다. 그리고 동시에 느껴지는 이명(耳鳴)과 두통. 이마를 누르며 그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윽."
현실적인 고통 때문인지 의식은 빠르게 부상했다. 아르주나는 꿈에서 보았던 것을 떨쳐내듯 고개를 내저었다. 머리는 무겁고 눈 안쪽이 아팠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을 최대한 정확하게 확인하는 것이 그보다 더 중요했다.
아르주나는 허리를 펴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여기는……."
그가 깨어난 곳은, 아르주나로서는 전혀 기억에 없는 공간이었다.
여지껏 마스터를 따라 꽤 여럿의 특이점으로 다녔어도 이 비슷한 곳의 풍경조차 본 적이 없다. 그만큼 그에게는 낯선 공간이다. 그저 영령으로서의 지각이, 아마도 서기 1990년대의 어딘가, 라고 막연히 추측할 뿐이다. 그리고 그 주입된 지식은 주위의 풍경을 해체해 주어진 순서에 따라 이를 낱개의 단위로 해석한다.
맨션, 초인종, 가로등, 현관문.
낯선 시대의 이름들이 머릿속을 맴돈다. 생전에 경험해 본 적 없는 것들이 지식만으로 흘러든다. 이름과 보이는 것을 조합하며 풍경을 재조립했다. 그 시대에 맞는 지식이 주어진다 하더라도, 원래부터 그 시대의 사람이 아닌 이상은 어색하기 그지없다. 아르주나는 그제서야 자신의 주변을 둘러싼 환경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그 자신은 아마 이 맨션의, 몇 층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아무튼 몇 층인가의 복도에 있는 것 같다. 1990년대의 어느 맨션, 복도. 흐름을 짐작할 수 없는 상황에, 아르주나는 신경질적으로 눈살을 찌푸렸다. 혹시 조금 전의 꿈과 관련이 있는 건가. 내키지 않는 상황들끼리 맞물려 좋지 않은 생각만 들었다.
아르주나는 이마를 누르던 손을 내려 입술 위에 얹었다. 몇 번 침을 삼키고 목소리를 내 보았지만, 여전히 들리는 이명 탓인지 그 자신의 목소리도 탁하고 낮게 갈라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역시, 꿈을 꾸는 건, 좋지 않은 징조다.
아르주나는 다시금 주위를 살폈다. 탁한 주홍색으로 칠해진 천장과, 둥글게 이어지는 외벽의 형상이 눈에 들어왔다. 베이지색 벽면에는 벌레가 기어가듯 기묘한 무늬가 들어가 있어 거슬린다. 머리 위 천장에는 일정한 간격으로 박힌 전등들이 모호하고도 꺼림칙한 빛을 뿌리고 있었다.
어찌 됐든 자신이 독단으로 이런 곳에 왔을 리는 없다. 마스터가 근처에 있을 것이 분명하다. 무슨 연유로 따로 떨어지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최대한 빨리 합류하는 게 좋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아르주나는 비어 있는 복도를 향해 목소리를 냈다.
"마스터?"
그러나 한참이 지나도 사람의 대답이라고 할 만한 것은 돌아오지 않았다.
대답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서 있던 아르주나는, 그 자신의 목소리가 만든 반향이 사라지고 난 뒤, 몇 걸음을 내딛었다.
얄팍하나마 그가 지니고 있는 현대의 지식에 의하면, 이런 종류의 건물은 대개 거주용으로 이용되는 것일 텐데도 이곳에선 사람이 산 흔적은 물론 인기척조차도 느껴지지 않는다.
……대체 어떻게 된 거지.
의도치 않았던 만큼이나 구둣발소리가 크게 울려, 아르주나는 반사적으로 발을 멈췄다. 다시금 복도에는 무서울 정도의 고요함이 내려앉았다.
일상적으로 들릴 법한 소리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 공간이다. 아마도 마술적인 힘에 의해 외부와 차단되고 있는 것이겠지. 아르주나는 여태까지의 경험을 머릿속에서 되살려보았다. 어쩌다 그 내부로 들어오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곳은 대개 침입자를 반기지 않는다. 외부와 차단되어 존재하고자 함이 그 이유다. 누군가가 들어오기를 바라는 곳이라면, 외부와 차단되지도 않았을 테니까.
거기까지 생각하고 아르주나는 활을 꺼냈다.
무언가 무거운 것이 끌어올려지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그 소리는 가까워지고 있었다. 입술이 바짝 말랐다. 활을 쥔 손에 자연히 힘이 들어갔다. 그르륵거리며 벽을 긁는 듯한 기분나쁜 소리. 칼데아에서 몇 번 이용해 본 적이 있었기에 그 구동음이 엘레베이터의 소리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곳은 하나하나가 소름끼친다. 마치 누군가의 내장을 더듬어가는 것 같은 기분이다.
짐승의 뱃속을 긁어내는 듯.
끌어올려지던 것이 멈췄다. 동시에 허망할 정도의 전자음과 함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르주나는 심호흡을 했다. 벽면에서 얼핏 본 배치도에 의하면 엘레베이터가 있는 곳은 건물의 중심부에 해당된다. 엘레베이터 홀을 둘러싸고 원형으로 배치된 집들과, 그 집들을 다시금 둘러싸는 형태로 복도가 있다. 엘레베이터 홀로 향하는 한 줄기의 길은 아르주나가 서 있는 곳에서 두 집 정도를 더 돌아간 곳에 있었다.
"……마스터, 근처에 계시다면 부디 대답을."
다시 한번 복도 너머를 향해 말을 걸었지만, 이번에도 대답은 없었다. 동시에 직감할 수 있었다. 저 너머에 있는 것은 분명 호의적이지 않은 것이다.
아르주나는 시위에 화살을 메겼다. 손아귀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그는 최대한 발소리를 죽이고 걸었다.
복도의 어디에 이르러서였을까.
순간, 귀가 먹먹해질 정도의 이명이 들려왔다. 정말 찰나의 일이었다. 목이 움츠러들고, 고막이 찢어질 것 같은 고통에 그는 상체를 숙였다. 이명은 끊기지 않고 이어졌다. 머릿속까지 멍해지고, 힘이 풀린 손에서 활이 미끄러져 떨어졌다. 그의 손을 벗어난 신물이 연기처럼 흩어지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누군가의 손이 무력히 고개 숙인 그의 뒷목을 잡아 내리눌렀다. 어떤 미력한 저항도 하지 못하는 채로, 철퇴와 같이 그를 내리찍는 무게에 아르주나는 무릎부터 꺾이듯 무너져내렸다.
마치 무언가의 저주처럼.
바닥에 부딪혀 넘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몸은 이상하리만큼 감각이 없었다. 넘어지고 나자 이명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동시에 아주 또렷하게,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는 듯한 남자의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그의 목소리를 아르주나에게 들려주기 위해 이명이 끊긴 것 같았다.
「―‘잃어버리는 자’여, 그대를 환영한다.」
아르주나의 귓가에서, 혹은 등 뒤에서, 혹은 머리 위에서 들리게끔.
남자는 건조한 어조로 말했다.
「이제부터 함께 상실의 기억을 재생하자.」
동시에 눈앞이 어두워졌다. 의식이 끊기기 직전에, 희미한 태엽 장치의 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