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확정성 연인 #1 / 현대 대학생 AU
생각날 때마다 씁니다. 캐붕과 끝없는 가벼움 주의(..)
아르주나가 그 남자에게 반한 것은, 2개월 전의 일이었다.
이전에는 그에게서 그 정도의 느낌을 받아본 적이 없으니 감히 그렇게 말해도 될 것이다. 그날 그에게 닥쳐왔던 것은 일종의 폭력과도 같은 한 순간이었고, 아르주나는 그 순간의 남자에게 매혹됐다. 그러나 스스로도 그때의 몰이해와 몰지각에 대해 설명할 길이 없었다. 아르주나는 자신이 왜 그렇게 순식간에 무너졌는지 알지 못 했고, 그와 동시에 알고 싶지 않다고도 생각했다.
아르주나는 거울 앞에 선 채 옷깃을 고쳤고, 긴장해 달아오른 뺨에 손을 댔다가, 괜스레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어쨌든 그는 오늘 고백한다.
"미안하지만 먼저 교제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
"……네?"
그리고 고백하자마자 20초도 되지 않아 차였다.
아르주나는 머리를 한 대 거하게 맞은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이 남자한테 애인이 있었단 말인가? 그러나 아르주나는 기본적인 조사도 없이 고백하러 나서는 타입이 아니다. 그에게 고백을 하는 사람은 있었어도 그와 사귄다, 고 하는 사람은 없다고 했었는데. 머릿속에 수십 가지 생각이 동시에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그러나 곧 정신이 들었다. 지금 이게, 현재 상황인 것이다. 눈앞에는 그가 있다.
카르나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아르주나의 안색을 살피며 물었다.
"괜찮나, 아르주나."
"아니, ……괜찮습니다."
누구 때문에 이러고 있는지는 굳이 얘기하지 않겠다. 그걸 굳이 말해서 상대의 마음을 어지럽힐 만큼, 아르주나는 속 좁은 사람이 아니니까.
"그보다, 그랬군요. 몰랐습니다. 실례를 저지른 게 아닐지."
"아니, 나야말로 네 마음은 기쁘다."
하지만 찬 거라면, 이렇게 애매한 화법은 안 했으면 좋겠는데…….
"……괜찮다면."
"네?"
"번호를 주겠다."
무슨 번호?
영문을 알 수 없는 아르주나는, 눈을 깜박이며 카르나를 쳐다보았다. 이게 무슨 소리지? 핸드폰 번호라면 이미 알고 있다. 그야, 지난 학기에 조별 과제를 같이 하면서 번호를 교환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핸드폰 번호가 바뀌기라도 했나?
"번호, 말입니까?"
"응."
고개를 끄덕인 카르나가, 바지 주머니를 뒤져 영수증과 펜을 꺼냈다. 대체 왜 그게 거기에서? 같은 느낌으로 아르주나는 그가 하는 양을 쳐다보았다. 펜이나 영수증을 주머니에 넣는 짓 따위, 아르주나라면 절대 하지 않을 테지만…….
고통스럽게도 상대에 대한 호감은 그것마저도 귀여워 보이게 한다.
삼색 펜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이유도, 영수증을 지갑에 넣지 않고 주머니에 일일이 다 챙겨다니는 이유도 알 수 없지만 그걸 꺼내 손바닥에 대고 무언가를 쓴다. 그리고 그걸 아르주나에게 건네주기 전 카르나는 자신의 핸드폰을 꺼내 그 영수증 뒷면을 촬영했다.
뭔데?
"자."
아르주나는 떨떠름한 얼굴로 내밀어진 영수증을 받아들었다. 앞면은, 오늘 점심 학교 식당에서 먹은 카레우동이다. 300엔.
"뒤에 번호가 있다."
"아, 네……."
뒤집어보자,
32
아르주나
라고 쓰여 있다.
"32……?"
"그렇다."
"이게, 무슨 번호입니까?"
카르나가 말했다.
"네 앞의 사람이다."
"네?"
"네가 32번이니까, 31명이 앞이다."
그러니까.
대기인수 32명이라고?
은행 접수 창구에 있는 그거라고?
"카르나……?"
"걱정하지 마라.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는다."
"아니, 네?"
"보통 한 달이면 된다."
머릿속이 폭발 직전이다.
이게 무슨 상황인지, 어떻게든 따라가려 하는 아르주나의 뇌내 회로였으나.
"그럼, 네 차례가 되면 연락하겠다. 농구 시합이 있어 이만 가보겠다."
그리고 카르나는 조만간 보자, 는 한 마디를 남긴 채 왔던 길로 돌아가버렸다.
거기에 남겨진 건, 번호표(업무 : 연애)를 들고 있는 아르주나와 공허한 바람뿐이었다.
"아니,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합니까……."
"네가 날 불러서 이러고 있는 것도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뭐."
"술주정이 아닙니다, 메이브. 술주정이 아닙니다."
"아, 그래, 방금 그 말 두 번 한 거 알지?"
"네……. 그치만 역시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해요……."
메이브 앞에 아르주나는 지갑에 잘 접어 넣어두었던 그 문제의 번호표를 꺼내 놓았다. 뒷면을 돌려본 그녀가, 곧 어깨를 떨며 웃기 시작했다.
"풉, 아하하! 이게 뭐야! 진짜 번호표잖아?"
"그러니까요……."
"말도 안 돼, 32번? 31명이나 아르주나 앞에 있단 말야?"
"네……. 여기, 베일리스 한 잔 더요."
"아, 난 데킬라 선라이즈."
다가온 바텐더가 주문을 받아 가자, 메이브는 다시 아르주나를 돌아보았다.
"그래서, 31명? 31명이라니, 얼마를 기다리라는 건데?"
"한 달요."
"한 달? 그럼 하루 한 명 꼴로 사귀었다가 헤어진다고?"
"그러게요?"
몸을 일으킨 아르주나는 눈을 깜박거리며 메이브를 쳐다보았다. 무용과의 여신이라 불리우는 그녀는 찰랑거리는 머리카락을 어깨 뒤로 넘기며, 손 안의 번호표 겸 영수증을 살짝 흔들어보였다.
"뭐, 좀 어이없긴 하지만……."
"역시 그렇죠."
"한 달 기다려보면 어때?"
"네?"
아까 전 하루에 한 명씩 사귀고 헤어진다는 계산에 술이 반쯤 깼는데, 이번 멘트에는 남은 술이 다 깼다.
"웃기긴 해도 한 달 후면 확실히 사귀어 주겠단 거잖아?"
"그건……."
아르주나는 잠깐 생각에 잠겼다. 번호표를 받았으니, 그렇게 되기야 하겠지.
"지금은 당황스러워서 너도 좀 그렇겠지만. 난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오히려 좀 신선하기도 하고. 이런 남자도 꽤 재밌잖아?"
"……이 상황을 두고 그렇게 말하는 건 당신밖에 없을 겁니다."
"음, 그러려나? 그치만 지금은 쿠짱 일편단심."
아르주나는 이 자리에 없는 동아리의 일원을 떠올리곤, 적당히 고개를 끄덕였다.
곧 바텐더가 두 잔의 칵테일을 가져와 두 사람의 앞에 잔을 내려놓았다. 바텐더에게 미소로 화답한 그녀가, 다시 아르주나를 돌아보았다.
"그래서? 한 달. 기다린다, 안 기다린다?"
"그렇지만 정말로 한 달을 기다린다고 하면, 곧 겨울방학이."
"시기를 걱정하는 거야, 지금? 저런, 아직 덜 고픈 모양이지."
그렇게 말하는 그녀를, 아르주나는 멍한 얼굴로 쳐다봤다.
"시기는 별로 중요하지 않아. 오히려 더 좋을 수도 있지? 크리스마스잖아. 크리스마스를 핑계 삼아 진도 나가기도 좋은 시즌인걸."
"……."
"오히려 한 달 정도면 좀 더 마음을 불태우면서 기다려보기에 적당하지 않겠어?"
설득당해 버렸다.
그날 술값은 아르주나가 냈다.
집에 돌아온 아르주나는, 침대에 앉아 디데이 앱부터 하나 깔았다. 유료 무료 상관없이 기왕이면 평점이 높고 깔끔한 걸로. 그리고 오늘로부터 정확히 31일 뒤의 날짜를 써 넣었다.
물론 딱 그날에 맞춰지리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기분상의 문제니까.
그러고도 아르주나는 침대에 누워 괜히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슬슬 씻고 잘까, 싶어 핸드폰을 내려놓고 일어났을 때.
진동이 울렸다.
메시지든 전화든, 갑자기 소리가 크게 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 집에서도 늘 매너 모드로 해 놓는다. 조용한 집 안이니 그 정도도 잘 들렸다. 아르주나는 곧바로 침대로 가 핸드폰을 집어들었다.
발신인은 메이브였다.
「제목 : 화이팅♪
내용 : 인생은 짧으니, 사랑하라 소년이여♬」
대체 왜 보낸 건지 궁금할 정도다.
혀를 찬 아르주나가 핸드폰을 내려놓으려고 몸을 굽힌 순간에, 다시 한 번 손 안에서 진동이 짧게 울렸다.
발신인, 카르나.
「제목 : (없음)
내용 : 30번」
이런 서비스는 필요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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