Ремонт #상 / 테메레르 AU
모든 의미 있는 기억의 처음.
길가메쉬를 향해 남자는 그렇게 말했다.
- 내가 네 비행사야.
두 번은 없을 변덕이었다. 길가메쉬는 죽은 용의 날개 아래에서, 피를 흘리고 있는 사람을 발톱에 걸어 끌어냈다. 그는 비행복을 입고 있었지만 생각보다 가벼웠다. 막연히 생각했다. 비행사들은 다 이렇게 가벼웠던가? 그를 집어들며 용은 자신의 하나뿐이었던 비행사가 얼마의 무게를 지니고 있었는지 떠올려보려 했지만, 좀처럼 생각나지 않았다. 어쩌면 피를 많이 흘렸기 때문인지도 모르지. 그렇게 생각하며 길가메쉬는 앞발톱으로 그의 몸을 받치듯 감쌌다.
비늘 덮인 표피 사이로 뜨뜻미지근한 액체가 스며드는 느낌이 난다. 남자는 빈사 상태에 가까웠지만 어쨌든 살아 있었다. 목 안에서 피가 끓는 소리, 떨리는 가슴, 울컥대며 그의 몸 어디에 난 건지 모를 구멍에서 피가 쏟아진다. 그를 감싸쥔 앞발 안을 들여다보자, 용의 금빛 비늘은 어둠 속에서도 피에 젖어 반짝이고 있었다.
정말로 두 번은 없을 변덕이다. 검은 용과 피웅덩이 사이에 가로누워 있는 창백한 얼굴이 표석처럼 또렷했기에 내려왔고, 그게 겨우 숨을 쉬고 있었기 때문에 두 번은 없을 변덕을 부렸다. 길가메쉬는 무거운 눈꺼풀을 내리깔았다가, 고개를 들었다. 몸체를 지탱하기에 걸맞는 거대한 피막형의 날개가 펼쳐져 바람을 받았다.
흰 얼굴을 한 것들이 자신의 눈이 닿는 곳에서 죽는 순간은 보고 싶지 않았다.
의료 막사에 남자를 던져놓은 뒤에도 길가메쉬는 아마 그가 곧 죽지 않을까 생각했다. 길가메쉬가 그를 집어올려 주둔지로 날아가는 동안만 해도 남자는 몇 번이고 몸을 떨며 피를 토했고, 그럴 때마다 한층 꿀럭대며 그의 몸 여기저기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사람이 피를 그렇게 흘리고는 살 수 없는 법이다. 인간이 아니었기 때문에 길가메쉬는 냉정하게 생각했다.
그러니까 정말 변덕이었던 셈이다. 눈앞에서 죽는 꼴이 보기 싫어 막사에 던져놓았을 뿐이다. 남자가 전투에 같이 참여했던 강습 용 부대의 지휘관이자 대령이라는 것은 그 이후에나 알았다. 인간들의 계급이니 직위니 하는 것에는 조금도 관심 없었으니까. 어차피 죽을 테고. 길가메쉬는 그의 몸에서 끊임없이 흘러나오던 피를 떠올렸다.
- 아, 길가메쉬. 이건 곧 내가 죽는다는 뜻이야.
피에 젖은 입술이 길가메쉬를 향해 말하는 듯했다.
꼬리를 휘둘러 땅을 내리친 그는, 몸을 일으켰다. 제일 먼저 잊게 되는 게 목소리라던가. 과연 그 말대로다. 당장도 떠오르는 것이 달싹이던 입술 정도니까. 길가메쉬는 주둔지를 등지고 숲 쪽으로 향했다.
오래 전 일이다. 길가메쉬는 죽은 비행사와 관련된 것의 대부분을 잊었지만 이름만은 잊지 않았다. 물론, 그가 구해준 남자와 관련된 것의 대부분은 기억하고 있었지만 그의 이름 따위는 알고 싶지 않았다. 제일 오래 남는 것은 이름이다. 어차피 죽을 거라면 이름도 궁금하지 않다. 그는 묘지에 세워지는 한 장의 묘비로만 남을 테니까.
기억은 적을수록 좋다.
"대령님? 카르나 대령님, 정신이 드십니까?"
"……."
"제 목소리가 들리시면 눈을 두 번 깜박해 주십시오."
"……."
"들리는군요, 다행입니다. 여기가 어딘지 아시겠습니까?"
"……."
"정신을 잃기 전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 나십니까?"
"……."
"……."
"……내 용, 은."
"……아."
"그는……."
"……일단, 지금은 좀 더 쉬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깨어나신 지 얼마 되지 않으셨으니까요."
"……."
"깨어나셔서 다행입니다."
"……."
카르나는 기억한다. 껍데기까지도 검은색이었던 알이 품은 애매한 온기를.
딱 일 년 여섯 달만에 그 알에서 용이 깨고 나온 순간을. 걸을 힘이 없어 몸을 밀며 다니던 검은색 아기 용을. 태어난 지 하루만에 이를 세워 그릇을 오독오독 씹는 걸로 그를 웃게 했던 용을.
카르나 그 자신이 글자와 말을 가르쳐 아이처럼 길러냈던 용이다. 앞발과 뒷발이 유독 튼튼하고 두꺼워 틀림없이 대형급 용이 될 거라고 모두가 말했다. 그의 용은 두 달만에 쌍엽기만큼 자랐지만, 어린애마냥 콧잔등으로 카르나의 허리를 밀어 넘어뜨리는 걸 좋아했다. 한 살이 되어 몸 길이가 십여 미터에 이르렀을 땐 앞발의 새끼발톱으로 카르나의 제복 망토를 슬쩍 눌러 구멍을 내곤 했다. 몸 길이가 아닌, 서 있을 때의 키로만 그 크기를 잴 수 있게 되었을 때 그 용은 카르나의 집 지붕을 살살 발톱으로 긁어 지붕에 카르나의 이름을 써 놓았다. 핑계만은 훌륭해서, 그가 아무리 높은 곳이라 하더라도 이 위를 지나갈 때엔 카르나의 집을 꼭 알아보고 싶다고 했다.
용은 긴 세월을 산다는데. 이대로 내가 먼저 죽고 나면 너는 새 비행사를 맞이할 수 있을지. 카르나를 걱정하게 만들 만큼, 카르나 자신보다도 카르나를 사랑해 주었던 그의 용.
다정하던.
한밤중에, 카르나는 잠에서 깼다.
식은땀을 얼마나 흘렸는지 몸이 다 찼다. 카르나는 얇은 담요를 끌어당겼다. 오른쪽 눈은 보이지 않았지만 보이지 않는 게 중요하지 않을 만큼 아팠다. 움푹 도려낸 듯한 고통에 작게 신음을 내뱉으며 카르나는 겨우 침상 아래로 내려왔다.
영관급의 의료 막사는 상대적으로 일반 병사용의 것보다는 깨끗했으나, 그렇다 해서 결코 편한 것은 아니었다. 전장이라면 어디든 으레 그렇듯이. 카르나는 자신이 아직도 피 묻은 군복 바지를 걸치고 있는 것도 몰랐고, 그게 상처에 들러붙어 함부로 뜯어냈다간 간신히 붙은 살마저 떨어져나갈 정도인 것도 몰랐다. 그저 비행복 안에 입는 반소매의 셔츠 차림인 어깨와 가슴이 차가워 담요를 그 위에 두르고 걸었다.
그의 용은 대형급이니까, 의료 막사 근처에는 못 있게 했을 것이 분명하다. 막사 근처에 큰 용이 있으면 군의관들이 지나다니기에도 불편하고 환자를 이송하는 데에도 어려움이 있다. 이해는 하지만.
이럴 때는 조금 가까이에 있게 해 줬으면 좋았을 텐데.
제일 먼저, 만나서, 괜찮다고 전해주고 싶은 상대가 멀리 있다.
온몸에 엄습해 오는 격통을 참으면서도 카르나는 주둔지로부터 조금 떨어진 숲을 향해 걸었다.
어렴풋하게 잠의 경계를 헤매고 있던 길가메쉬는 무언가가 다가오는 소리를 듣고 눈을 떴다. 비척비척 걸음을 옮기는 소리에, 처음에는 부상을 입은 산짐승이라도 되나 했지만 금방 그 소리가 두 발로 걷는 동물의 것임을 알았다.
곧이어 그의 시야에 들어온 걸 보자마자, 길가메쉬는 슬쩍 들었던 고개를 내려놓았다.
담요를 두른 남자가 길가메쉬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아."
그도 길가메쉬를 알아본 듯했다.
사실 거리가 있다고 해도, 길가메쉬만한 대형급 용을 못 알아보기는 어려운 일이다. 남자는 비틀거리며 길가메쉬의 앞으로 다가왔다. 길가메쉬는 그가 뭘 하려는지 가만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는 흐린 눈으로 웃어보이더니 길가메쉬의 앞발 발톱에 손을 얹어왔다. 그리고 담요를 두른 채로 길가메쉬의 발톱 사이에 들어가 몸을 웅크리고 누웠다. 생각지도 않았던 남자의 행동에 길가메쉬는 앞발을 들어 남자에게 무슨 짓이냐고 물어보려 했지만, 그는 자신이 머리를 기댄 길가메쉬의 발톱을 만지며 잠에 취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다행이다……."
그러고는 감아놓은 태엽이 다 풀어진 기계인형마냥 고개를 푹 떨궜다.
그 어린 시절이 끝나고, 우리는 뭘 했더라.
카르나는 기억해내려 애썼다. 용은 카르나를 지키려고 했다. 그래, 그랬지. 그래서 카르나를 비행사로 금방 받아들였다. 어차피 내 등에 탈 사람이 있다면 그건 카르나 한 사람뿐이니까, 라고 말했다. 그의 용은 성체로 자라나, 그의 발톱 하나가 카르나의 몸뚱이만큼 컸다. 카르나의 머리만큼이나 커다란 검은 눈 밑의 비늘이 살짝 젖어 있었다.
- 내가 죽는다면 마지막 순간에도 카르나가 있는 게 좋아.
카르나의 용은 그렇게 말했고 카르나는 일반적인 상황에서라면 너보다 내가 빨리 죽게 될 거라고 말했다. 용은 그 말을 듣기 싫다는 듯 꼬리의 제일 가느다란 끝부분으로 붕붕 소리를 냈다. 그리고 그의 용은 차라리 내가 먼저 죽어서, 너 없는 세상을 안 보고 말지, 라고 대꾸했다. 카르나는 그의 말을 잠깐 곱씹어 보았다가 그건 불공평하다고 항의했다.
- 나는 이미 너 없는 세상을 많이 알고 있다.
- 그렇다고 해서 나까지 그걸 알아야 할 필욘 없잖아?
용은 뛰어난 지성을 가지고 있다. 동시에 감정을 느낀다. 그들은 사람처럼 생각한다. 그런 존재를 자신이나, 자신과 같은 이들이 군의 무기로 이용하는 것이 맞는가? 카르나는 몇 번이고 생각했지만 그 역시 군이 지닌 하나의 부속품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늘 그 언저리에서 생각은 멈췄다.
그리고 카르나는 그의 등에 몸을 싣고 날았다. 그와 함께 몇 개의 도시를 되찾고, 몇 개의 적 대대를 파괴했으며, 그보다 많은 중대와 소대를 기능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의 인식과 현실은 언제나 멀리 떨어져 있었다. 너를 무기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한편, 너를 잃어버리기엔 내가 외로웠다. 어쨌든 함께 있을 수 있는 현실은 안락했다. 그 안락함이 무엇으로 빚어졌는지 생각하고 싶지 않을 때가 있었다. 그가 나를 필요로 해. 카르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필요로 해 주는 존재가 있다는 것은 도망칠 변명이 된다.
그를 태운 용의 몸이 떨어져내리는 것을 느끼는 순간까지.
울면서 잠에서 깬 순간, 카르나는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길가메쉬가 눈을 떴을 때, 그의 발톱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대체 간밤엔 어딜 다녀오신 겁니까, 대령님."
"……."
"갑자기 없어지셔서, 다들 혹 대령님이……."
"……."
"……아닙니다. 어쨌든 돌아오셨으니까요."
"……."
"그보다, 오른쪽 눈은 어떠십니까."
"……안 보인다."
"……."
"……."
"……아마 그."
"……."
"눈은, 안 보이실 겁니다. 앞으로도……."
"……그렇군."
"그래서 지상부대로, 재배치되실 거란, 이야기가."
"……."
"저, 대령님, 장례는……."
"……."
"……내일, 이야기할까요."
"……."
"그럼……, 쉬십시오."
++
작년에 왔던 각설이가 죽지도 않고 또 테메레르 AU를 재탕했습니다.. 아마도 길×카르보단 길+카르에 가깝지 않을까... 생각 중입니다...
일단 또 할 일이 있다보니ㅠㅠ... 상/하로 나누어서 올립니다...
들은 노래는 이쪽 ☞ https://www.youtube.com/watch?v=dqh2dw1Ty7w
'길카르ギルカル' 카테고리의 다른 글
Небо хочет упасть #상 / 테메레르 AU (0) | 2018.06.23 |
---|---|
Ремонт #하 / 테메레르 AU (2) | 2018.06.17 |
पुत्र / 엠프렉, 2세 (비밀번호 : putra) (0) | 2018.05.31 |
가진 것 없으나, #4 (0) | 2018.05.28 |
FLAG #하 / 현대 레이서 AU (0) | 2018.05.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