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방이다.
아르주나는 눈을 뜬 채, 멍하니 생각했다. 천장은 낮고 윤곽만 보이는 전등에는 빛줄기 하나 없다. 희미한 마력의 흐름에서 아마도 그, 1990년대의 맨션 어느 곳이겠거니 하는 추측만이 가능했다. 어슴푸레한 어둠 속에서 무엇이 상하는 냄새인지 모를 악취가 콧속을 찔렀다. 방 안에서 느껴지는 것은 삶보다도 분명한 죽음의 기척이다. 부패와 사취, 시랍과 망해 따위의 단어가 한데 헝클어져 나뒹굴고 있다.
……끔찍한 꿈.
그는 눈꺼풀 위로 팔을 덮었다. 끔찍한 꿈이었다. 이곳과 크게 다르지 않은 발밑의 어둠, 카르나를 기점으로 하여 밝게 빛나던 세상, 카르나의 어깨를 잡아 돌려세운 순간 아르주나가 보았던 모든 것.
웃는, 얼굴이었다.
아르주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힘주어 감은 눈꺼풀 안쪽, 아직도 선명했다. 생전의 아르주나는 그의 그런 얼굴을 평생에 걸쳐 단 한 번 본 적이 있었다.
-아르주나.
그 얼굴과 그 목소리, 그리고 그 얼굴에 떠오른 분명치 않은 표정이 이윽고 영원히 정지하는 순간.
자신은 그의 산산조각나 버린 몸 앞에서, 무엇을 생각했던가.
발소리가 하나 모자라 뒤를 돌아보았을 때, 익숙한 멤버들 사이로 보여야 할 얼굴 하나가 안 보였다. 리츠카는 거기에서 발을 멈췄다. 일행들로부터 꽤 떨어진 곳에서 카르나는 혼자 복도의 천장을 가만히 올려다보고 있었다.
"왜 그래?"
"뭔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 것 같다."
가까이 다가온 리츠카에게 카르나는 그렇게 대답했다. 여전히 시선은 천장의 어느 지점에 고정한 채였다.
카르나의 얼굴을 바라보던 리츠카도 고개를 들어 그쪽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리츠카가 보기에는 지금까지 보아온 천장과 다른 것을 찾기 어려웠다. 아, 그렇지만 소리가 들린 거면 천장 자체엔 별다른 무언가는 없는지도.
"예를 들어 어떤?"
"음……."
카르나는 반듯한 눈매를 내리깔며 잠시 고민하더니.
"가벼운 것들이, 아주 많이. 금속으로 된 것 같았다."
"막연하네."
"잠깐이었다."
"그랬겠지?"
리츠카의 말에 카르나는 눈을 깜박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흠, 떨어지는 소리라.」
"뭔가 짐작 가는 거라도? ……아니, 들은 거야 닥터?"
「그건 아니지만, 그냥 좀 생각하고 있어. 뭐, 원체부터 수상한 동네지만 그런 게 어떤 신호가 될 수도 있는 법이고.」
"……그런가."
「카르나의 말만 가지곤 어떤 소리였는지는 알기 어렵겠지만…….」
"나는 도움이 되지 않는군."
카르나가 그렇게 중얼거렸다.
"아니, 카르나, 너무 확정적으로 말할 것까진."
"사실이지 않나?"
"그, 그래도 닥터가 말한 것처럼 그 소리, 앞으로 일어날 일에 관련된 어떤 힌트일지도."
"지나치게 희망적인 전망이다."
"그치만 카르나만 들은 거잖아? 그런 게 좀 특이한 게 아닐까. 역시……."
장황하게 설명을 시작한 리츠카를, 그는 가만히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한 쌍의 말간 눈동자가.
"그러니까, 안 들렸던 게 갑자기 들리는 건……."
"……."
그리고 결국 리츠카는 한숨과 함께 어깨를 떨궜다.
"……저기, 닥터, 어떻게 생각해?"
「음, 호텔 주인이 천 엔 손해.」
"안 듣고 있었지?"
「하하하.」
뒤를 돌아보면, 일행들이 카르나와 리츠카를 쳐다보고 있었다. 특히 시키의 눈빛이 가차없었다.
"……카르나, 일단 갈까."
"네가 원하는 바가 그것이라면."
리츠카는 몸을 돌려 일행들이 있는 쪽을 향했다. 리츠카로부터 조금 뒤처져서, 카르나도 걷기 시작했다.
"그치만 역시 좀 신경쓰여."
「카르나가 들었다는 떨어지는 소리?」
"응."
으음, 하고 닥터가 작게 신음했다.
"닥터는 못 들었다고 했지?"
「나도 못 들었을 뿐더러, 혹시나 싶어 조금 전 영상을 돌려봤지만 별다른 소리는 안 들렸어. 금속으로 된 게 여러 개 떨어지는 소리, 라고 했으니까 한 번 들리고 끊겼을 리는 없고……. 그 비슷한 소리든 뭐든 잡힐 만도 한데 말이야.」
"카르나만 들은 거네, 그러면."
「그렇게 되겠지.」
"저기, 닥터, 카르나는 스스로 도움이 안 된다고 했지만……."
카르나 쪽을 돌아보자, 눈이 마주쳤다. 리츠카는 그를 향해 살짝 웃어보였다. 카르나는 눈만 깜박이며 그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음, 그래도 역시 긴장하는 게 좋지 않을까. 이런 징조를 소홀히 하다간 된통 당하기 일쑤니까."
어느새 옆에 와 있던 시키가 퉁명스러운 어조로 물었다.
"뭐가."
"시키가 활약할 때가 곧 오지 싶어서?"
"무슨 밑도 끝도 없는 소리야. 제대로 설명하지 그래."
"으음, 아직은 그냥 예감이니까."
리츠카는 그렇게 적당히 대꾸하며 다시 일행들을 앞질러 걷기 시작했다.
"그보다, 너, 아까 전부터 계속 앞에서 걷고 있지 않냐?"
"어? 그야 내가 마스터니까."
"대장이 제일 앞에서 촐랑거리고 있으면 안 되잖아."
"제일 앞에서 촐랑거리는 게 대장이라고 생각할 정도의 지능을 가진 사람, 여기 없을 것 같은데."
시키는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보통 제일 앞은 아니지."
"괜찮아. 여차하면 지켜줄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데."
"바본지, 멍청인지, 사람을 너무 잘 믿는 호인인 건지."
"시키, 마지막은 나한테 높은 평가를 하고 있는 거 아냐?"
"바보멍청이."
그렇게 나직하게 내뱉은 뒤, 그녀는 고개를 홱 돌렸다.
"하긴, 누군지도 제대로 모르면서 나랑 저녀석을 선뜻 데리고 다니는 걸 보면 뻔하지."
"……."
저녀석, 이라고 시키가 지칭한 카르나는 그녀에게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서서.
또 다시 천장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어라, 하고 리츠카는 발을 멈췄다.
"……지금."
카르나가 제자리에 멈춰 선 리츠카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방금 전의 것, 들리지 않았나?"
리츠카와 시키, 그리고 나머지 일행들도 카르나가 있는 쪽을 돌아보았다.
"뭐가?"
"이번엔, 뭔가……."
무거운 것.
"예를 들어?"
"사람."
"……."
"아마도, 성인 남성 정도."
카르나의 말에, 일행의 시선은 일제히 천장을 향했다.
그러나 그 천장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여전히 기분나쁜 색, 그 위로 벌레가 기어가는 것 같은 무늬만이 보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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