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g,

※ 안 되는 개그를 쓰려고 노력하던 중의 캐붕 주의










  뭐가 문제였을까요?


  영기소환실에서 끓여먹다가 키보드 위에 엎지른 카레맛 컵라면? 성정편을 알뜰살뜰 모은 끝에 교환한 기쁨에 춤추며 들고 오다 밟아서 끄트머리가 깨진 성정석? 아니면 다 빈치 양이 세는 걸 귀찮아 한다는 걸 알고 호부 다섯 장과 바꿀 마나프리즘 백 개 사이에 은근슬쩍 끼워넣은 적당한 크기의 초록색 곤약 젤리?




  "……마스터, 잘도 그런 짓을."


  "남의 생각을 읽는 능력도 가지고 있다니, 아르주나, 과연 축복받은 영웅이네."


  "좀 전까지 입밖에 내어 스스로 자백하고 계셨습니다."




  그렇게 대답한 아르주나가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우아하고 귀족적인 미남인 것에는 변함이 없어, 고개를 젓는 동작까지도 유려하기 그지없었다. 리츠카는 그걸 빤히 보다가 역시 잘생겼군, 하고 중얼거렸다.




  "고개 다시 한 번만 더 저어볼래?"


  "……."




  아르주나는 잠깐 싫은 표정을 했지만, 마스터에게 충성스러운 서번트답게도 한 번 더 고개를 저어 주었다. 그리고 그걸 본 리츠카는 아르주나를 똑바로 응시하며 말해 주었다.




  "음, 다시 봐도 잘생겼어."


  "……그보다, 이제 어떻게 할까요. 일단 환기를 시키는 게."


  "그게 좋긴 하겠지?"


  "그러면 일단 환기 장치를 가동하겠습니다."




  예의바른 어조로 말한 아르주나가 뒤쪽으로 조금 물러났다. 벽면에 붙어 있는 환기 장치를 가동시키기 위함이었다. 그러는 동안 리츠카는 소환식이 있는 쪽에서부터 밀려나오는 정체불명의 흰 연기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래도 생각보단 멀쩡한 것 같고.


  


  "……특별한 냄새는 나지 않으니까, 독성이 있는 건 아닐 것 같은데."


  "그래도 혹시 모릅니다. 위험하니 물러나 계세요."


  "그치만 퍼지는 속도도 엄청 느리고 말이야. 아, 그러고 보니 아르주나는 환기 장치 켤 줄 알아?"


  "이 아르주나, 못 하는 것이 있으면 늘 배울 자세로 있습니다."


  "역시 사랑받는 영웅은 다르네-"




  그의 대답과 함께, 머리 위의 높은 천장에서 낮은 기계 구동음이 들리더니, 곧 팬이 열렬히 돌아가는 소리가 났다.


  느릿느릿 리츠카의 발치로 다가오던 연기들이 천장으로 비행하여 환기 장치의 날개 속으로 투신하는 것이 보였다. 리츠카는 고개를 들어 천장을 올려다보았다가, 소환식 쪽으로 시선을 다시 옮겼다. 




  "어라."


  "……."




  소환식 위에 누군가 엎드려 있다.




  "누가 소환됐나봐."


  "……아."




  여기 좀 와 보라고 가리키며, 리츠카는 아르주나를 돌아보았다. 




  "……아르주나?"




  그런데 어째선지, 아르주나는 완전히 굳은 채로 서 있었다. 조금 전까지 조작하고 있던 기계의 옆으로 조금 비켜 서서.


  리츠카는 고개를 갸웃했다.




  "-카르나."




  그가, 한숨처럼 중얼거린 이름.


  리츠카는 소환식 쪽을 다시금 쳐다보았다. 




  "카르나."




  그리고 리츠카가 소환식 위에 쓰러져 있는 서번트를 확인하기보다 먼저, 아르주나가 성큼성큼 걸어가 소환식 앞에 몸을 숙였다. 




  "……으음."




  저기요.


  너무 댁들 세상 아닌지.




  "나참, 아르주나 씨, 마스터를 완전 공기 취급하고 있는데요."




  리츠카는 투덜거리며 그 옆으로 다가갔다. 물론 머릿속으로는 생각하고 있다. 카르나, 5성급 랜서. 삼기사 클래스 중에서도 랜서는 특히 평타가 준수하다. 거기다 당장 쓸만한 5성 랜서가 없고…….


  카르나는 소환식 위에 축 늘어져 있었다. 




  "……."




  리츠카는 그 옆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카르나의 어깨를 흔들어대는 아르주나를 쳐다보았다. 




  "……범인은 이 안에 있는 거야?"


  "그런 말씀 마십시오, 마스터. ……카르나, 일어나라!"




  아르주나가 사정없이 카르나의 어깨를 흔들었다. 그러나 그의 손에 붙들린 말라빠진 어깨와 몸은 흐느적대기만 할 뿐, 의식이 있는 것처럼 보이진 않는다. 리츠카는 눈을 파다닥 깜박이다가, 아르주나를 제지하고 그의 앞에 가 쪼그려 앉았다. 




  "기면증인 걸까?"


  "……서번트에게 그런 증세 따윈 없습니다."


  "생전의 버릇이라거나."


  "제가 아는 한 없습니다, 그런 버릇."


  "아르주나는 숙적이지 애인이 아니잖아."


  "……."




  마지막 말에 왠지 모르게 분한 표정을 짓는 아르주나였지만.


  엎드려 있는 카르나의 뒤통수를 빤히 내려다보던 리츠카가 손가락을 뻗었다. 아르주나는 리츠카의 손가락과, 리츠카의 얼굴을 말없이 쳐다보았다. 


  하얀색의 머리카락, 조금 길게 자라 목덜미를 덮는다. 손가락에 닿자 사락거리는 소리가 난다. 리츠카는 탐구심 넘치는 눈빛으로 가만히 그를 내려다보았다. 조금 더 손가락을 미끄러뜨리자, 구속구를 닮은 금색의 목걸이가 끝에 걸렸다. 




  "……저, 마스터, 이 행위에 어떤 의미가."


  "살아 있나 궁금해서."


  "그렇다면 호흡을 확인하는 게 먼저가 아닐까요."


  "아, 그것도 그렇네."




  리츠카는 그의 견갑골과 목, 등의 절반 정도를 덮고 있는 따스한 빛 아래로 손을 집어넣었다. 마르고 단단한 등이 만져졌다. 


  그리고.




  "헉."


  "무슨일이십니까마스터카르나놈이숨을안쉬기라도하는겁니까"


  "……네가 숨을 안 쉬는 건 아니고?"


  "……."


  "장난. ……호흡은 있네. 일단 이대로 있는 것도 뭐하고, 의무실로 데리고 가는 게 우선이지 않을까 싶은데."




  손을 빼내며, 리츠카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쪽 무릎을 꿇은 채로 앉아 있던 아르주나의 시선이 자연스레 리츠카를 따라 올라왔다. 




  "뭐 해, 아르주나?"


  "……."


  "업고 따라와."


  "제가, 말입니까……."


  "그럼, 내가 업을까?"


  "아닙니다."




  무슨 당연한 이야길 굳이 묻는 건지. 


  어깨를 으쓱해 보이자, 아르주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곤 더 이상의 군말 없이 카르나의 몸을 돌려 눕혔다. 리츠카는 허리에 손을 척 얹고 말했다. 




  "자, 가자, 의무실."


  "……예."




  아르주나의 대답을 듣고 나서, 리츠카는 그를 기다리거나 하는 일 없이 곧장 영기소환실의 출입문 쪽으로 걸어갔다. 출입문을 여는 스위치를 누르자 바람 빠지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문 바깥으로는 익숙한 복도. 거기로 한 걸음 내딛어 나가기 전에, 리츠카는 뒤를 돌아보았다. 




  "아르주나?"




  하지만 곧장 뒤에 따라올 것처럼 대답했던 서번트는 여전히 소환식 앞에 무릎을 꿇은 채였다. 




  "숙적 감상 중이야? 나 방해하면 안 되는 거고?"


 


  그러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애초에 아르주나는 리츠카가 서 있는 쪽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흠."




  짧은 한숨을 내쉰 뒤, 리츠카는 팔짱을 끼고 섰다. 


  다시 가긴 귀찮은데…….


  왼손에 있는 령주 생각이 잠시 났다고 하지 않으면, 거짓말이리라. 




  "나 거기까지 가야 돼-?"




  역시, 대답 없음. 


  리츠카는 한층 더 무거운 한숨을 내쉬곤, 차마 떨어지지 않는 걸음을 억지로 떼어가며 느릿느릿, 거북이의 속도로 걸어갔다.


  아르주나는 소환식 바로 옆에 무릎을 꿇고, 카르나의 상체를 자신의 무릎 위에 올려 놓은 채였다. 리츠카는 슬쩍 그 아래를 훑었다. 쭉 뻗은 가느다란 다리. 뭐야, 아르주나라면 가볍게 들어올릴 수 있겠는데.




  "왜 그래?"


  "……."




  그러나 리츠카의 충직하기 그지없는 서번트는 여전히 얼어 있었다. 




  "저기, 아르주나."


  "……입니다."


  "뭐가?"




  고장난 태엽 인형마냥 천천히 고개를 움직여 리츠카를 올려다보며, 전례 없을 정도의 절박한 표정으로 아르주나가 말했다. 




  "여자, 입니다."


  "……."




  리츠카는 가만히 그를 쳐다보다가.




  "……너?"




  라고 물어보는 것으로 헛된 아이스 브레이크를 하려고 했고.




  "……카르나가요."




  아르주나는 세상에 다시 없을 아이스 프린스의 표정으로 말했다.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그렇게 사람 죽일 것 같은 표정의 아이스 프린스는 처음이었습니다. 








  "……글쎄, 이벤트? 여름 휴가 기간까진 아직 좀 남았는데."


  "무책임한 발언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닥터 로마니."


  "으음."




  닥터 로마니가 등 뒤로 손을 돌려 커튼을 닫으며 대꾸했다. 차륵, 하는 소리. 그리고 그 사이로 보이던 하얀 머리통이 금방 안 보이게 되었다. 리츠카는 입매를 찡그리며, 자신의 옆에서 닥터와 이야기하고 있는 아르주나를 돌아보았다.  




  "그치만, 이쪽은 나도 추측밖에 할 수 없으니까 말이야……."


  "……."




  아르주나의 침묵. 


  과연, 닥터는 이 아이스 프린스의 눈빛을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요.




  "……리츠카 군, 엄청 신난 눈치네."


  "들켰군요."


  "하아아아……."




  뱃속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것 같은 한숨과 함께, 로마니는 어깨를 떨구었다. 




  "……영기에 혼선이 생긴 게 아닐까? 영령의 좌라는 건 무량대수에 가까운 평행세계들의 종착점이니까."


  "……."


  "……."


  "……."


  "그, 무슨 일이 일어나도 그닥 이상하지 않달까……."


  "……."


  "……저기, 리츠카 군까지 그런 눈빛인 건 좀 너무하지 않아?"




  리츠카는 턱을 괴었다. 




  "음, 아르주나를 좀 따라했습니다."


  "서번트도 마스터도 너무해, 정말."


  "아무튼 원인은 불명이라는 거죠."


  "뭐, 그런 셈. 일단은 깨어날 때까지 두고 봐야……."




  그때.


  무언가 얇은 천이 맞닿는 소리가 커튼 안쪽에서 들려왔다. 


  리츠카보다 그걸 먼저 인식한 아르주나의 시선이 커튼에 못박혀 있었다. 




  "……기다릴, 필요는 없다."




  잠에서 막 깨어난 것처럼 조금 탁한 목소리, 그러나 확연히 가늘다. 커튼 아래에서 손 같은 것이 허우적거리는 걸 보고 아르주나가 자리에서 일어나 커튼을 여민 쪽으로 다가갔다. 




  "……."




  하지만 아르주나는 바로 커튼을 열지 않고 그 끄트머리를 잡은 채로, 가만히 심호흡을 하고 있었다.




  "뭐 해, 아르주나. ……열어줘."


  "……예, 마스터."




  리츠카의 명령에, 아르주나가 커튼을 걷었다. 




  "아르, 주, 나……?"




  침대 위에는, 무릎을 세우고 앉은 카르나와, 그 혹은 그녀의 발등 위로 쓸려 내려간 의료용 모포. 바깥의 빛이 눈부신 듯 카르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커튼 밖의 사람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다소 무기질적으로 느껴질 법한 하늘색의 눈동자가 천천히 움직여 초점을 맞춘다. 아르주나는 그동안 그대로 거기에 서 있었다. 


  서 있는 아르주나와 커튼의 사이로 어렴풋하게 비치는 카르나의 모습을 보려 리츠카는 몸을 조금 내밀었다.




  "……네가, 여기 있었군."




  가늘긴 하지만 톤 자체가 낮아 중성적으로 느껴지는 목소리. 느리게 눈을 깜박이던 카르나가 아르주나의 팔 옆으로 리츠카를 바라보았다. 




  "그대가, 나의 마스터, 인가."


  "……어."




  이유를 명확히 설명할 순 없지만, 왠지 모를 느낌에 리츠카는 아르주나를 쳐다보았다. 그러나 아르주나는 그 자리에 선 그대로, 카르나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일단은……?"


  "그렇군. ……자기 소개가 늦었다."




  그렇게 말한 카르나가 다리를 침대 아래로 내렸다. 저 다리로 어떻게 서 있는 거지, 싶은 다리로 카르나는 바닥을 딛고 섰다. 리츠카는 불균형한 조각품을 보는 듯한 기분으로 카르나를 바라보았다. 


  일어서며 살짝 비틀거린 카르나의 팔을 아르주나가 붙잡았다. 카르나는 조금 놀란 눈으로 아르주나를 돌아보았다. 아르주나도 그 표정에 담긴 의미를 눈치챘는지 금방 손을 놓았다


  닥터 로마니가 슬쩍 리츠카 쪽을 곁눈질했다. 이 미묘한 분위기를 어떻게 해야 하냐는 시선이었다. 


  어쩌겠습니까. 흘러가는 대로 둬야지요.




  "……서번트, 랜서. 진명, 카르나."




  아, 역시.


  카르나구나.




  "잘 부탁한다."




  …….




  "……으음, 어."


  "……?"




  고개를 갸웃, 하고 있는 카르나를 놔두고, 리츠카는 그 옆에 서 있는 아르주나에게 이리 와 보라는 뜻을 가득 담아 손짓했다. 




  "하실 말씀이라도."




  그리고 함께 막간 2의 험난한 여정을 통과한 아르주나가 리츠카의 옆으로 다가와 물었다. 리츠카는 그에게 귀를 여기로 대 보라고 다시금 손짓했다. 아르주나는 충성을 다하는 기사와 같이 가슴에 살짝 손을 얹고 몸을 숙여 왔다. 


  그 귓가에 리츠카는 작게 속삭였다. 




  "……저기, 여자라며."


  "네."


  "어디가?"


  "……."




  잠깐 얼굴을 돌려 리츠카의 눈을 쳐다본 아르주나가, 리츠카의 귓가에 다시금 입술을 가까이 했다. 




  "……가슴이요."


  "……."


  "모르시겠습니까?"


  "어……."


  "……."


  "……."


  "……."


  "아르주나, 너……."




  못 들을 것을 들었다는 양 아르주나는 숙였던 몸을 일으켰다. 그 뒤편에서 카르나는 멍하니 눈을 깜박이고 있었다. 리츠카는 카르나 쪽을 보았다가, 여전히 애매한 포지션에 서 있는 닥터에게 시선을 돌렸다. 




  "……큼, 각설하고."




  짧게 헛기침을 한 뒤, 아르주나가 카르나 쪽으로 몸을 돌렸다. 




  "……."




  그리고 그 카르나는.


  어째선지 자신의 가슴에 두 손을 얹고, 납작하기 그지없는 가슴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


  "……."


  "……아르주나."


  "……네."




  카르나가 고개를 들어 아르주나를 쳐다보았다.




  "내가 왜 여성의 몸을 하고 있는 거지."


  "……그건 제가 묻고 싶습니다만."




  그리고 카르나는 다시 자신의 가슴에 손을 댔다. 




  "……."


  "……."


  "나도 생각하지 못 했다만……. 역시 아르주나다. 예리하군."


  "아, 네……."


  "하지만 가슴만으로 내가 여성체가 되었음을 알아보다니……."




  카르나는 침대에 앉은 채로 아르주나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가, 


  천천히 시선을 내려서.




  "나보다 아르주나, 네 가슴이 더 커보이는데……."




  아.


  아르주나 얼굴에서 핏기가 없어졌다.




  "소, 소환되자마자 대체 무슨 소릴 하는 거냐, 네놈은!"


  "그렇지만."


  "다다다닥쳐라!"




  이젠 단풍잎마냥 시뻘개졌다.




  "……그, 저기, 아르주나."




  배 털을 거꾸로 쓰다듬 당한 고양이처럼, 퍼득 놀란 눈으로 아르주나가 리츠카를 돌아보았다. 


  아니, 이 얼굴은.




  "아, 정말이네."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가슴."




  그렇게 말하며 리츠카는 웃었다. 


  이 얼굴. 


  틀림없이 놀리고 싶어지는 아이스 프린스의 홍당무 버전이다. 












  ++

  리퀘스트 받은 걸 가볍고... 가볍게... 썼습니다...(...) 리퀘스트 해 주신 타르야 님 감사하고 죄송합니다(ㅋㅋㅋ ㅠㅠ ㅠ)

  주나가 카르나의 가슴둘레를 아는 건 역시 운명의 숙적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운명의 숙적은 바스트 웨이스트 힙 26 24 27